2023년 8월 21일 월요일

기원 같은 것

*
꿈에 못 보던 무덤 하나가 나왔다.
일어나 종이 위에 동그란 무덤 하나를 그린다.
혼자 있어 외로운 무덤.
한켠에 누군가를 그려넣었는데 나도 모르는 여자다.
그로 하여금 참배차 무덤가를 서성거리게 한다.
석물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비석 또한 그린다.
엊그제 신문에서 본 억울한 이름들을 써넣을까 하다가
내가 그린 여자의 이름조차 알 수 없어 그만둔다.
이름을 물어보기엔
여자는 피곤해 보인다.
그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볼까.
기다린다.
여자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
지면의 물감이 마른 뒤에도 무덤가에 있다.
그는 나와 무관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알 것 같다.

*
며칠 뒤 나는 연작에 해당하는 그림을 한 점 더 그린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 무덤을 전면에 배치한다.
비석은 화면에서 잘라내고
상석에 빈 유리병을 하나 놓아둔다.
오늘도 찾아온 여자를 그릴까 하다가
더 이상 그를 힘들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대신 유리병 속에 꽃 한 송이를 그린다.
지금까지 내가 그려본 꽃 중에 가장 화사한 노란꽃 한 송이를.
조금 전 여자가 이곳을 다녀갔다는 것만
이곳을 다녀갈 정도로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만 그리고 싶다.
아마도 그건 꿈이겠지.
꿈이라고들 말할 것이다.
꿈이어도 좋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