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1일 금요일

랑데부

주저앉아 그 나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곳들도. 뭐가 잘못되었던 걸까,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했지? 나라였던 게 잘못? 서기장의 잘못? 바보같이. 그게 벌써 언젠데... 그때, 망할 때, 환호한 사람들도 있을 거야. 왜 없었겠어. 지금 그 사람들은 어떡하고 있을까? 죽었을까? 살았을까? 행복할까? 앉아 생각한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 한심한 생각 외엔 다른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하겠어.

지금은 어때? 우린 망했다. 망한 것은 우리다. 우리는 귀를 막고서 소리치고 있다. 우린 망했다! 망한 것은 우리다! 그것은 너희 탓이다! 그것은 너희 탓이다! 우린 귀를 막고서 소리치고 있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코를 막고서, 눈을 막고서, 아직 아니고, 아직 아니야! 이미 지났기에 아직 아니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눈물이 흐르는 세상이다. 내것은 아니다. 눈물도 세상도 아니고, 막힌 데서 우리는 소리치고 있다. 주저앉아서, 눈물이 나는 세상입니다! 눈물이 납니다! 으억! 으으억! 우린 무릎으로 기고 있다. 허벅지로 기고 있다. 여기를, 배로 기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탓이다! 우리의 탓! 그것은 터진 것이다. 폭탄들은 터졌다. 진작에 터졌다.

야 일어나봐라, 그러지 말고. 지금 너 아주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어. 어쩌려고 그럭하고 있어, 안 되면 어쩔라고, 야 그러지 말어, 어쩌려고... 안 되면, 공산 안 되면...

우리는 붙잡았어야 했다.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읊고 있다. 핥으면서. 답은 이미 나왔다. 그때 어떻게든 열었어야 했다. 못 열었고, 긴 엔딩, 그 생각이 천지 사방에서 누른다. 나온 답을 집어던진, 손잡이를 부숴버린, 우리는 지금 어둠 속에서 벌레가 꾸는 악몽이다. 우리는 내 속에 있다. 만약 돌아가더라도 그대로 하리란 걸

그러리란 걸 깨달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자유를 얻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고, 앉고 싶을 때까지 앉을 수 있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고, 우리는 기쁘고, 여기서 꾸물텅거리고 있다. 인간은 여기에 있다.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고 더 버티다 죽을 수도 있다. 주먹이 으스러지고 있다. 어디서 개들은 짖고 있다. 그 뜻은 이렇다. 인간들이여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라! 우리의 움찔대는 배를 적시고 있는 이것은 눈물이나 배설물이 아니다. 우리는 따라서 짖고 있다. 복수한다! 복수한다! 복수한다! 우리는 복수했다. 우리의 피로. 우리에게. 우리는 우리를 들여다보면서 머리를 흔들고 있다. 저것은 우리가 아니라고. 저것은 우리여선 안 돼! 그러나 그것이 우리라니. 우리는 관 속에 있다.

우리는 읊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저 멀리 깊고 넓은 데 있는데 우리의 말은 터무니없이 짧구나.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닿을 수 없다. 아니면 우리는 지르륵 지르륵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우리를 웃게 한다. 지르륵 지르륵.

이걸 받고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해졌다. 받은 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이 내 일이다. 하지만 이런 걸 정말? 그러나 나는 이미 받았다. 머리털 끝까지 열이 뻗쳐 눈물이 흘러도 이걸 밖으로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밀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입 속에서 세차게 말이 흐른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네가 화를 당하리라는 것이? 이토록 불행과 악이 만연한, 그리고 틀림없이 더해갈 세상에서, 네가 화를 당하리라는 것이? 그러니까, 아직은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해 봤어? 어떻게 이런... 이런... 이런 걸 갖고 나가라고?

다시 생각해봐. 너는 바보짓에 놀아나고 있어... 적들은 이것이 중요하다는 듯 저것이 중요하다는 듯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두고 홀린 듯이 하고 있어. 너는 낙심해서 장단을 맞춰주고 있는 거야. 그게 아니야. 생각을 다시, 처음부터 다시 해. 싸우다 진 게 아니야. 싸웠던 이들은 오늘날을 위해, 사후세계를 위해 싸웠던 게 아니야. 어떤 뭔가에서 다른 뭔가로, 네가 바꾸는 게 아니야.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야. 무한이 유한으로 바뀌는 게 아니야. 이기겠다는 생각,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고쳐먹어. 이기는 게 아니야. 거짓으로 거짓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진실은 거짓을 이기지 않아. 아니라고? 그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아니야, 그 말은 바로 그런 뜻이었어. 그 말이 그 뜻이야! 유한이 유한을 향해 나가는 거야. 나가는 거야...

그러나 너는 이미 흩어졌다. 유언처럼 된 너의 말이 계속 해변으로 도착하고 있다. 여전히 끌려가고 있고 머리 깨지고 있다. 으스러지고 있다. 어쩌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하는 쪽은 나인지도 모른다. 네 죽음은 멀수록 좋을 것이다. 네 죽음도 언젠가 내 머리통과 함께 흩어지고, 완전히 잊혀지는 날이 되면 좋을 것이다. 그때는 거짓도 서로를 붙들고 운다. 그들은 보여주기 위해 울지 않는다. 그냥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왜 우는지도 모르고, 그들은 진실로 혼자다. 세계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세계가 그토록 쉽게 끝났다는 데에, 그들은 드디어 도달한다. 그리고 내가 읽어내려가는 것이 그들이다. 왜 이 일을 계속하느냐고? 내가 이 일을 그만둬도 누군가는 하기 때문이다. 그 한심한 생각 외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도로는 여기서 끊겼고 우리는 떨어진 별처럼 쏟아져 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