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온라인가나다라는 전쟁터

교정공으로서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애증의 장소, ‘온라인가나다’는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딸린 게시판이다. 어문 규범, 어법,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 등에 대해 국립국어원에 직접 문의하고 답을 받을 수 있는 곳. 대화라는 양식의 설명이 필요한 어문 규범이 반드시 있고, 그 대화라는 건 대체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간의 말이 아니라 개 짖는 소리만으로 개의 짖는 소리를 묘사하려 한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자. 멍멍! 한 다음 월월! 하는 것이다. 온라인가나다의 매일매일은 전쟁터다. 언어는(한국어는?) 수천만 마리의 개다. 그 속성상 각축할 자리가 끝없이 있어 왔고 또 생겨난다. 최전선의 양상은 아비규환일 수밖에 없다. 검색하면 나올 질문을 또 하고 또 하며 무한히 반복할 것만 같은, 무한한 것만 같은 수의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묻는지 모른 채 뭔가를 묻는 사람들, 이건 왜 이렇고 저건 왜 저렇냐고 한국어 그 자신이 와도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왜 우리는 우리인가!), 그리고 언어라는 미로 속에서 눈떠 버린, 인터넷을 떠돌다 ‘국립’이라는 이름의 빛에 이끌려 온라인가나다를 찾아와 자신만의 특색 있는 언어 이론을 전개하는 괴인들... 마지막으로 그 모든 질문에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야만 하는, 국어의 지난날과 앞날의 진창 속에서 되든 안 되든 뭔가를 어떻게든 해야만 하는, 모니터 너머의 누군가(들?), 그들의 초인적인 인내력, 또는 한번 들여다보고 싶은 답변 양식 목록...

최근 ‘유모차(乳母車)’라는 단어를 ‘유아차(乳兒車)’ 또는 ‘아기차’로 순화하여 쓰자는 캠페인에 대하여, 일군의 반페미니즘 성향자들이 이 온라인가나다에 찾아가 단체로 따지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이를 두고 ‘이 정도면 정신병 아니냐’라든가, ‘정신병을 욕으로 쓰지 마라’거나, ‘쟤들은 나쁜 거지 아픈 게 아니다’라든가 하는 이야기들도 보았는데... 나 교정공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멍청, 무능, 무력, 무지, 저능... 이런 단어들은 뭔가를 욕할 때, 특히 우리의 적들을 욕할 때 동원되는 단어들 중 특히 맘이 아픈 것이다(맘이 아프지 않은 이와 대체 어떻게 이야기할까!). 어쩌면 바로 그래서 악이란 것이 고안되지는 않았을까? 악은 우리와 저들의 저능을 달리 보지 않으려는 상냥한 마음 때문에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마음이 아프니까, 차라리 악한 편이 좋다는 거다. 그들, 아마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온라인가나다를 방문해 봤을 일군의 반페미니즘 성향자들은 내게 환상소설 속 악역을 맡은 사교도들처럼 보인다. 특정한 종류의 집단적 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속삭인 끝에 드디어 전면에 나서서 뭔가를 소환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 소환은 현실에 뭔가를 가져오는 식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을 가로막으려는 식이다. 즉 환상과 달리 이 현실에서 현실은 이미 소환된 것이다. 그래서 환상을 환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뒤집혀 묘사된 환상을 다시 뒤집어, 변화하려는 현실을 사교도적인 것의 자리에 놓고 있다. 바로 이 구조가 그들을 사교도로 만든다... 이런 광경은 화도 나지만 슬프기도 하다. 그들은 마치 빨려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얼굴은 과거를 향해 잡아당겨지고 늘려진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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