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9일 토요일

정오의 담장

나는 담장이다.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내 죽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뭘 바라고 기다리는지는 모른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지금 내 안에서 무언가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저 아이들은 아닌 것 같다. 한 명이 앉아서 엎드리고 다른 한 명이 위에 올라간다. 나는 꽤 높으므로 그것이 내 높이와 같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뒤에 있는 장미 나무를 잠깐 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뭐가 보였어?” “나무가 있었어.” 장미 나무는 자기가 잠시 보여진 것이 불만인 듯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경향이 있다. 나는 여기서 움직이지 못한다. 경험하고 체험하고 관조할 수는 있지만 인간사에 개입하지는 못한다. 일정 부분 나와 닮은 아이들의 용도는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이고 만약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다시 이곳을 찾을까? 가려져 있고 넘보기 어려운 것을 아이들은 보고 싶어 하고, 나는 그것을 방해하는 인공물로서 저 아이들이 다시 보고 싶어진다. 나는 내 뒤의 저택에 사는 이들보다 저 아이들이 좋았다. “그때 기억해?” “응, 기억나. 네가 엎드리고 난 그 위에 올라가 나무를 봤지.” “그 나무는 뭐였을까?” “장미 나무.” 그렇게 말한 내 목소리에 저들은 깜짝 놀랐다. 그간 있었던 일은 별다를 게 없었다. 나에게 달라진 점은 있었는데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들은 아니었다. 나는 목소리를 내서 저들과 말하기 시작했다. “안녕? 너희들 키가 커졌구나.” “담장 님이에요?” “그렇단다. 이젠 한 명이 숙이지 않아도 내 너머를 볼 수 있겠어.” “관심 없어졌어요. 키가 자라는 일은 곧 멈출 거예요.” “그거 아쉬운걸.” 과연 그 소년들의 말은 맞았다. 다시 봤을 때 그날의 키와 거의 엇비슷한 듯했다. “그때 기억해?” “응, 기억나. 담장이 말을 했지.” “난 그 안의 장미 나무를 다시 봤으면 좋겠어. 담장이 알려준 그 나무 말이야.” 그들은 중년이 되어 있었다. 나도 조금 낡고 돌 부스러기가 있게 되었다. 아마 저들이 세 번이나 여길 찾은 건 날 위해서는 아니었으리라. 내가 기다리던 것이 저들이 아니었듯이. 그러나 나는 저들이 좋았던걸. 이제 다시 날 찾을 때에, 내 뒤의 장미 나무를 다시 궁금해할 때. 그 때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바라던 것이, 기다려왔던 것이 뭔지를 알았다. 그건 내 뒤에 있는 저택을 내 눈 안에 담는 것이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때의 중얼거림으로 장미 나무도 내 욕망을 알게 됐다. “그때 기억나?” “응, 기억나. 담장이 다시 말하는 일은 없었지. 왜 우리는 이 주택에 관심을 가졌던 걸까?” 저들은 노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둘러진 이 주택은 사는 사람 없는 빈집이 되었다. 나는 무너져내리는 것을 참고 있었다. 다음번에도 나는 저들을 보고 싶었다. 내가 기다리는 이들은 아니었을지라도. 내 앞으로 다가와서 서로의 기억을 꺼내보던 그 아이들. 나는 지금 무덤으로 들어간 이들이 그립고 보고 싶었으므로 시간을 역순으로 가게 하기 시작했다. 다시 아이들이 된 그들이 보였다. “그때 기억나? 너희들이 날 찾아왔지. 그때 난 기다리고 있었어. 아직 정의되지 않던 무언가를. 난 내 뒤의 저택을 보고 싶어 했단 걸 뒤늦게 깨달았어. 그것을 이제서야 본다. 너희들의 눈동자 안에 있는 광경으로 말이야. 정말 아름답군. 내가 둘러져야 했던 게 이해가 갈 정도야. 정말 아름답구나…….” “하지만 그건 아저씨가 매여 있는 곳을 멀리서 본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니? 난 그래도 상관없었단다.” “난 매여 있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걸. 넌 내게 매여 있다.” “담장 아저씨, 그 자리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아요?” “그렇단다.” “그럼요, 조금만 기다려봐요. 다른 것이 마이너스가 될 때 혼자서 0 이상으로 움직여봐요.” “그런 일이 가능한 거니?” “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니?” “그건 내가 당신이 기다리던 사람이니까요.” 감았던 눈을 뜨자 병실 천장이 보였다. 얼마 후 그 사람이 와서 기뻐했고 오열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