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0일 일요일

역사 같은 것

손바닥 위에 잘 익은 체리를 올려놓는다. 동그랗게 불타서 이내 망가진다. 체리는 재로 변하고 재는 체리로 변하지 않는다. 그대로 오그라들어서 형편처럼 굳는다. 입으로 바람 불어 재를 턴다. 재가 날아가고 남은 자리는 이후에도 여전하다. 혼자 책임질 수 없는 것, 뜨거운 철심 같은 것, 한참 쥐고 있으면 손바닥에 다 묻는다. 체리의 인상이 피부에 검게 남는다. 이것에 대한 사람들의 평은 제각각이다. 잎 진 나무라는 이야기, 다 쓴 물병 같다는 소리, 아마도 읽다 버린 회고록에 가깝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런 말은 과하다. 앉은 자리를 치우고 차가운 눈을 구한다. 눈으로 집 짓고 한자리에서 머리 묶는다. 만년설 같은 재와 재와 같은 만년설이 어깨 위로 쌓인 지 오래. 한동안 재가 흩날리면 모두가 입 다물고 걸어가는데, 그럼에도 재가 흩날려, 입 열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우연히 내 옆을 지나간다. 나는 그쪽을 모르고 그쪽도 날 모르겠지만 서로 눈짓 인사하다가 익숙한 흔적을 그들의 손바닥에서 발견한다. 이대로 지나칠 것 같던 그들이 이쪽을 돌아보자 나는 내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