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1일 금요일

해골박

구區 내에서 손꼽히게 큰 A 공원에 이번에 새로 조성되었다 하는 테마관광숲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무슨 유치한 이름, 멍청한 이름을 붙였던데... 모르겠다. 하여튼 그 숲길 조성은 구청장 공약 사항이었다고 한다. 큰 나무를 줄지어 심고 캘리그래피 시가 들어간 표지판을 주르륵 세웠다는 모양이다. 지금 정확히 그 표지판들 중 하나를 보러 가는 중이다. 다른 게 아니라 구청장 본인이 쓴 시가 거기 있다지 않던가? 시 표지판이란 것만 해도 대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데(우리는 시인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심지어 구청장 녀석이 자기 시를 거기 갖다가 넣었다고? 정말이지 대갈통이 얼얼해지는 이야기다. 이것은 우리 출판사가 찾던 바로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좀 뻔한 얘기인 것도 같지만, 우리 ‘해골박’ 출판사는 만들어져야 할 책이 아니라 파괴되어야 할 책을 찾고 있다. 우리는 역사 또는 작품 속에서 여러 양상으로 펼쳐진 책(넓게는 문화) 파괴와 관련된 자료들을 닥치는 대로 조사했다. 새삼 그 의미에 대해, 왜 우리가 거기 매료되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알아낸 것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유구한 전통을 계승하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조금은 맞지만. 우리는 경계하고, 또 경계한다. 하지만... 환영한다. 우리는 어떤 파괴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어떤 파괴에 대해서는 절대로 아니고. 우리가 특히 흥미를 갖는 부분은 구분이다.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어떻게 구분되고 있는가? 우리의 관심은 지금 여기에서 편달 중인 구분자에게로 향하고 있다. 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 만들어지지 않은 책은 파괴된 걸까? 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파괴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파괴하지 말아야 할 가치는 있는가? 책을 파괴한다는 건 그러니까 대체 뭘까? 우리는 여전히 답을 찾고 싶다.

구청장 B씨의 시가 답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장 먼저 야구방맹이를 챙겼다. 수박 한 통과 피냐타, 글러브도 챙겼다. 근방에서 눈 가리고 수박·피냐타 깨기, 아니면 야구를 하다가 부숴버렸다고 하면, 혹시 걸리더라도 참작해주지 않을까? 일종의 문화실습동호회라고 하면? 어쩌면 야구방맹이로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 문제를 두고 우리는 토론했다. 징벌적 의미에서 내려치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가능하면 표지판 자체를 부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톱이나 망치, 빠루 등의 공구도 무겁지만 챙겼다. 불태우는 방안이나 페인트를 부어버리는 방안은 환경적 영향을 고려해 기각되었다. 만약 (표지판의 입장에서) 운이 좋다면, 시만 감쪽같이 바꿔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거기까지는 합의했다. 가능해 보이기만 한다면, 우리는 딱 맞는 크기의 백지를 준비해 거기 두 번째로 방문할 것이다. 정말 구청장 B씨가 거기에 자기 시를 (거의) 영원히 남길 생각이었을까? 그건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다. 아예 거기서 캘리그래피를 하는 방안도 나왔지만 그 도구는 안 챙겼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라는 데 우리는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우리는 무슨 퍼포먼스나 예술을 하려는 게 아니다. 완전 그 반대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차분하다. 우리는 먼저 확인할 것이다. 구청장 B씨는 정말 뛰어난 시인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많은 짐을 들고 그 테마관광숲길로 가고 있다. 해골박... 우리는 확인한 다음 집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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