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8일 화요일

식물의 기억



식물을 처음 키우는 이들이 고심하는 부분이라면 물 주는 방법일 것이다.

“겉흙이 마르면 물을 주세요.”

화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면 겉흙을 눌러도 축축한지 모르고 속을 깊게 파도 알 수가 없다. 과하게 애정을 주면 과습으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원망하듯이 축 처져 죽는 식물의 세계. 빛이 좋지 않으면 색이 변색되고 과하면 타버리고 통풍이 좋지 않으면 시들해진다. 바짝 마른 미라의 일부분을 화분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면 물을 주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언제 물을 주면 될까?

어제 잎의 각도와 오늘 잎의 각도가 멀어져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물을 준다. 어제의 각도를 알아야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애매한 레시피 같은 말이다. 이틀에 한 번 정오에 50ml의 물을 흠뻑 주면 된다, 라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식물에게는 그런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은 퇴근 후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왔니? 신경 안 쓰면 확 죽어버린다?”

여름이 되면 방법은 더욱 난해해진다. 어제의 주기와 오늘의 주기가 빠르게 바뀐다. 주기는 짧아졌다가 비가 쏟아지면 다시 길어졌다가 반복된다. 

몬스테라, 호프셀렘, 스파티필름, 더피고사리, 뱅갈고무나무, 튤립, 체리세이지, 고수, 로즈메리, 라벤더, 고구마, 대파, 당근, 상추. 식물의 이름을 부르면 식물의 기쁨을 알려준 박지혜 시인이 떠오르고 그의 손길이 닿은 식물의 표정이 생각난다. 식물에게는 사람의 그림자가 남아 있기 마련이다.

엄마는 이사를 가면서 모든 화분을 정리했다. 다시는 식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동생이 심은 아보카도를 영양제까지 주면서 기다란 나무 마냥 키워 놓았다.

무심하고 다정한 사람이 식물을 잘 키우는 것 같아요.

당신이 이런 말을 건넸을 때, 나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사람이 떠날 때 가장 먼저 버려지는 식물을 생각한다. 텅 빈 화분을 떠올린다.

꽤 많은 식물을 죽였다. 세로그라피카가 아름다워 들였다가 곰팡이가 슬어 버린 날을 기억한다. 장수 식물로 수명이 20년이었으나 1년을 채 못 살았기에 한 잎 한 잎 떨어질 때마다 울적함을 떨칠 수 없었다. 변산에서 만난 장미 허브도 생각난다. 장미 허브 화분을 들고 해안 일대를 산책하며 허브에게 강인한 이름도 붙여 주었다. 

술자리에서 “식물 물을 줘야 해서요.”라는 말을 하고 떠났을 때, 다들 믿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택시를 타고 급하게 돌아가 물을 주고 편히 잠들었던 건 식물만이 아는 기억이다. 목화의 꽃이 오전과 오후가 다르다는 것도 시인이 준 씨앗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식물을 말했는데, 사이에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집 식물에도 나의 기억이 스며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 화분들과는 어떻게 헤어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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