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6일 목요일

세네갈식 부고

선생님은 바쁘세요. 세네갈식 부고를 작성 중이시거든요.

(젊은이는 의심스러움과 자랑스러움이 반씩 깃든 얼굴 일부만을 문틈으로 빼꼼 내놓은 채 당신을 상대하고 있다.)

아 세네갈식 부고가 뭔지 궁금하시겠죠. 세네갈이라는 나라에서는 말이죠, 누군가의 죽음을 품위 있게 표현하고자 할 때 그 사람의 도서관이 불탔다는 말을 한다고 하네요.

(당신은 그쯤은 알고 있다고 말하려다 만다. 말을 많이 하느라 방심해서인지 젊은이가 문틈 공간을 아주 조금 더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왜 그런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으로는, 여행 중에 책으로 된 나무를 본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나무로 된 책이라 해야 할까요? 선생님이 쓰신 표현은 기억이 안 나네요. 그런데 이미지가 강렬해서 그건 기억이 나요. 잎사귀 하나하나에 선생님이 읽을 수 없는 문자로 된 아름다운 문장이 새겨져 있었대요.

(당신은 빙긋 웃는다. 선생은 왜 그것이 글자가 새겨진 나뭇잎이 달린 나무라 생각지 않고 책이라고 생각했을까?)

읽을 수 없었다 하셨으니 문장의 뜻이 아름다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가 조형적으로 아름다웠다는 뜻이겠지요?

생각해 보세요. 그 나무를 책이라 한다면 어떤 잎사귀를 먼저 읽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어떤 잎사귀를 먼저 만졌는지와 별개로 그 잎사귀들의 모임은 나무가 확실하잖아요. 그건 분명……

(젊은이는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당신은 박물학자가 그를 귀애하는 까닭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책일 거예요.

그런 책들로만 이루어진 도서관이 있어도 좋겠지요. 그리고, 그런데, 그런 도서관이 불탄다면…… 그건 누구의 부고가 되는 걸까요?

(……)

그건 그렇고, 선생님은 역시 바쁘세요. 오늘 만나시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요. 어떤 일로 오셨다고 전해드릴까요?

(당신은 지금 박물학자가 쓰고 있는 부고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불타오른 도서관에 대하여 열심히 쓰고 있을 박물학자와 당신은 오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입이 없다. 손이 없다. 몸이 없다. 둥둥 유영하는 당신의 몸에서 발하는 푸르스름한 빛은 문 뒤에서 얼굴만 내놓고 있는 젊은이의 코와 눈 사이 우묵한 부분을 속절없이 훑고 있다.

……

곧 박물학자가 직접 나올 것이다.

……

기다려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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