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5일 화요일

한 여름 밤, 농담들

미디액트 <한 여름 밤, 농담쓰기> 강좌가 처음 열린 건 2017년 8월이다. 첫 외부 강의라 커리큘럼을 짤 때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시를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시에 접근할 수 있을까? 당시에 나는 시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가볍게 쓰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한 여름 밤, 월요일에 모여 시를 씁니다. 시 같은 농담을 써도 됩니다. 자신의 농담 같은 시를 찾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시 주변에서 어슬렁대며 한 줄 이상을 공들여 쓰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당신은 여유가 있어야 하고 자신과 상대방의 거리, 기분, 취향을 빠르게 파악해야 합니다. 이해와 애정이 바탕이 돼야 자연스러운 농담이 만들어집니다. 설명하고 싶은 욕망도 억누를 줄 알아야 하는 섬세한 작업입니다. 강의는 그런 태도로 진행됩니다. 몇 가지 사항은 즉각적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농담이라는 가벼움을 내세웠지만 여성들의 시집을 매주 강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멍하니 여름밤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던 건 수업 도중에 그런 틈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이 강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가장 재미없는 사람을 위한 농담을 써봅시다, 라고 썼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수명 시인의 시집과 정한아 시인의 시집, 에밀리 디킨슨,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시집을 타인의 목소리로 듣는 시간은 밤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왜 여기 모여 있는 걸까 생각했다.


Q.1. 왜 이 수업을 듣나요?

― 머리를 비우고 가볍게 써보고자 합니다. 요즘의 생활이 좋습니다.
― 자신의 취향이라든지 성격이라든지, 점점 알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서.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 재밌을 것 같아서. 개그 욕심이 있어서.
― 강의는 많이 듣지만 실제로 글쓰기는 어려워하는 사람이에요.
― 살기 위해 홀로 새벽에 끄적였던 소수의 글을 제외하면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저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 시를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요.
― 시를 한 줄도 쓰지 않는데, 시를 쓴다,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하면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요. 거짓말쟁이로 살고 싶지는 않았네요.
― 다른 사람이 어떤 농담을 쓰는지 궁금하다.
― 멋진 농담을 하고 싶어서.



Q.2. 싫어하는 것 or 이것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 갑자기 다가오기.
― 집에 같이 가기.
― 딱히 없음.
― 엄청 진한 초코 브라우니를 다른 사람 혼자 먹는 걸 바라보게 하는 것.
― 등단이 목표가 아니어서 고강도의 합평은, 괜찮습니다. (사양해요.)
― 직장 상사.


책상 안쪽에는 그들이 적어서 준 메모가 아직도 있다. 이 강의는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총 4년이나 진행됐다. 수업을 하면서도 언제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이 여름의 농담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왔다가 사라진 사람들이 있었고, 보기 좋게 뒤뚱거리는 농담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의 문장처럼, 우리는 밤에 앉아 저마다 농담을 나누고 반복되는 여름 없이 헤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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