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9일 금요일

읽기모임


‘[읽기모임]을 모집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여성들의 책을 읽습니다. 열일곱 번째 책은 <헤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입니다. 대화를 나누거나 의견을 밝히지 않아도 됩니다. 읽고 메모지에 기록합니다.’


물론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읽기모임은 여성들의 책을 읽는 모임으로 2017년 12월에 시작해 2년 정도를 유지했다. 총 16권의 책을 읽었으며 한 번의 모임에 4명부터 12명까지 참여하여 꽤 많은 이들이 오고 갔다. 처음 포스터를 만들어준 건 뮤지션 아를이었다. 운영을 할 때는 이소호 시인이 도와주었고 유희경 시인의 도움으로 혜화에 있는 위트앤시니컬에서 두 시간가량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교류가 없는 모임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책을 두고 “있다”를 느끼기 위해 공을 들인 느슨한 연대 공동체였다. 참여자들이 읽고 포스트잇에 메모를 하면 사진을 찍어 그날 기록을 읽기모임 트위터 계정에 남겨두는 게 내가 하는 일이었다. (@Poststickbook)

여성들의 책을 읽었지만, 골라서 읽었던 적은 없었던지라 책을 고르는 것도 일이긴 했다. 기꺼이 읽혀야 할 여성들이 많았다. 당시 나는 출퇴근만 4시간을 하며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냈고 퇴근 후에 일정을 잡았기 때문에 ‘운영자가 빠져도 되나?’ 고심하며 이를 악물었다. 직장인의 마음이 더 커져버린 탓이다. 막상 가면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안도와 사람들이 모여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그 모든 것을 잊게 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부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동안 <인간의 조건 / 한나 아렌트>, <제2의 성: 상, 하 / 시몬 드 보부아르>, <페미닌 엔딩 / 수잔 맥클러리>, <사진에 관하여 / 수전 손택>, <브레이크-에이지 / 바토 치메이>*, <호텔 / 조애나 월시>, <어둠의 왼손 / 어슐러 K. 르 귄>,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 로이스 W. 배너>, <무정한 빛 / 수지 린필드 >, <오늘 너무 슬픔 / 멀리사 브로더>, <캣콜링 / 이소호>, <거부당한 몸 / 수전 웬델>, <공감연습 / 레슬리 제이미슨>, <연대기 / 한유주>, <달걀과 닭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읽었다.

책을 나열한 이유는 그들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보는 것이 필요하고, 이 모임의 성격은 결국 어떤 책을 읽었느냐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책을 선정하면 사람들이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게 적어서 신청했다. 책에 따라 사람들이 바뀌었다. 낯선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자주 만나니까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필체도 확인이 가능했다. 하지만 곧 잊어버렸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읽은 16권과 포스트잇들은 도대체 어떤 걸 남겼을까?

나는 이소호 시인에게 다음 읽기모임을 하게 된다면 그땐 일 년치의 책을 미리 선정하고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의견이나 이야기를 성실하게 들어주었다. 어떤 이야기를 했어도 응원해줬을 것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으니 각자의 자리에서 비대면으로 책을 읽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줌(zoom)에 접속하여 각자의 책을 읽고, 포스트잇을 보여주면 캡처해도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모여야만 여무는 마음이 있어 나는 미래의 책을 기다리기로 한다.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하니까.






*1992년 첫 연재를 시작으로 1999년 완결된 코믹스. 바토 치메이(馬頭ちーめい). 여성 작가. 현재 작품은 이게 유일하다고 한다. 만화책을 읽었던 시간도 있어서 이 책은 나만 가져가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