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8일 일요일

게친

그 주술사는 스피커의 어머니뻘 되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목맬 태세를 늦추지 않는 스피커와 거리를 좀 두고 서서, 주술사는 스피커에게 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죽을 필요가 없다? 살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주술사가 손등을 내보이며 다가왔다. 스피커는 밧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가 이내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주술사의 손등은 화상과 자상과 검은 멍이 수두룩했고 손목을 지나 팔까지 이어져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저 온갖 상흔들이 팔에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유추할 수도 있었다. 이내 자신을 괴롭힌 제약의 존재가 떠오르며,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어떤 것을 겪은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상하게도, 스피커는 마음 한켠에 감당하기 어려운 아련한 감정이 북받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끌어올려져 이제 그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을 처음 만나며 샘솟은 감정으로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것은 연민이었다. 연민을 얻게 되면서 스피커는 천천히 다가오는 저 사람 또한 지금 자신을 연민하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충격에, 또는 눈알이 쏟아질 것 같아서, 스피커는 악 악 소리를 지르며 그를 등지고 도망치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림자를 드리우며 참혹한 팔이 다가왔고 거기 달린 손이 스피커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주술사의 이름은 게친이었다. 게친은 스피커를 둘러싸고 있는 힘과 그 역인 주술과 제약을, 주술사들의 커뮤니티를, 그들의 강령을 말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처음의 말, 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증명하고자 했다. 위로하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야. 게친은 입고 있던 자색 로브의 안주머니에서 이상한 물건을 하나 꺼냈다. 그것을 무어라 말할지? 스피커는 그가 꺼낸 물건을 곧잘 해석할 수 없었다. 그것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길이에 꽃줄기처럼 몸이 가늘었다. 그것의 온몸은 검은색으로 광택이 났다. 게친이 그것의 툭 튀어나온 엉덩이를 누르자 그것의 주둥이에서 금색 창날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게친이 그 창날을 손에 찌르자 손에 새까만 피가 찍혔다. 게친은 그 새까만 피로 손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게친은 말했다. 이것은 사후세계의 물건이다. 사후세계? 게친은 자신이 사후세계의 물건을 가져올 수 있는 주술사라고 말했다. 그것이 내 주술이다. 잘 모르겠어도 사후세계라는 말을 듣자, 스피커는 죽을 의욕이 뚝 떨어졌음을 느꼈다.

스피커도 알기는 안다. 어느 민족에게나 죽은 다음의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서 종교서적을 주워 읽기도 했다. 쓰여있기로 사후세계는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 가려면 삯을 지불해야만 한다. 입장권을 사려면 충분한 양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거기 가려면 아주 오래 아프고 그 아픔이 낫지 않아야 한다. 거기 가려면 허덕여야 한다. 그래야 거기서 행복한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스피커는 믿지 않았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상의 어떤 것들, 슬픔과 외로움 괴로움 같은 것은 겪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인간은 고통을 반겨야 한다. 반기다 반기다 더 달라고, 더 내놓으라고 죽어버릴 때까지 애걸복걸해야 한다! 그것은 나어린 스피커가 보기에도 참 역겨운 일이다. 스피커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게친이 사후세계의 물건을 내보이며 사후세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게친은 말했다. 사후세계는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잖니. 얼른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스피커는 반문했다. 그럼 사람들이 죽는 건, 행복을 모르는 사람들, 삶의 어떤 부분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내지 못한 사람들, 안감이 뾰족한 쇠꼬챙이로 되어 있는 옷을 입고 있는 듯 깨어있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죽는 거, 제 풀에 죽고 싶은 사람들, 어쩌면 나와 당신이 그곳에 가는 거. 그거야말로 좋은 일 아닌가? 게친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곳은 이곳보다 좋지 않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여기보다 나쁜 곳에 가기 위해 죽을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네가 말한 사람들 또한 죽을 필요 없다. 살란 얘기가 아니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죽지 말라는 얘기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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