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3일 금요일

저 우는 거, 알았죠

노동절에 쉬는 일은 드물다. 이번 노동절도 그런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휴일이 생겼다. 최대한 체력을 아끼고 사람 없는 곳에 가고 싶었다. 강서습지생태공원에 가게 된 건 그 이유였다. 가깝고 자연을 볼 수 있으니까.

근처에는 소각장이 있었고 쇠를 태우는 냄새가 났다. 철새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은 고장이 나 있었다. 둘레길 조성이 잘 되어 있었으나 보수 중인 곳이 많아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가 다시 크게 돌아서 되돌아 나왔다. 운 좋게 습지 근처에서 백로를 보았다. 백로는 묘한 기품이 있다.

집에는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반대편으로 갈수록 점점 이상했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걸었다. 육교를 올라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도로였다. 길이 없었다. 먼지에 벌어진 튤립이 엉뚱한 곳에서 보였다. 예상치 못한 하루에 누가 봐도 이상한 사람처럼 도로를 걷고 있었다. 이런 경험을 누군가에게 말할 일이 생길까?

며칠 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에서 요청한 배리어 프리(Barrier-free)* 강연을 하면서 다시 그때의 풍경을 그려봤다.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면 보수 중인 문턱에서 돌아갔다가 자전거를 피했다가 돌고 돌아 백로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노들야학 강연장 안에는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있었다. 긴 책상 하나에 대부분 한 사람씩 앉았다. 오늘의 테마는 <배리어 프리, 핫플레이스를 찾아라>였다. 여행과 관련된 짧은 글쓰기 강연이라고 해서 시인, 작가들이 쓴 여행 책을 자료로 가져갔으나 제한적이었다. 내가 아는 세계는 비좁았다.

여행에서 그들에게 중요한 건 경사도다. 작은 문턱도 그들은 산의 정상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장소를 제공한 노들야학의 문은 모두 열려 있었고 턱이 없었고 문의 간격도 넓었다. 저런 문의 간격을 보는 건 익숙치 않았다. 이제 궁금해졌다. 이들이 어디를 가고 싶은지. 배리어프리 시설을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자유가 더 필요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누군가는 목을 가누지 못하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마이크를 끌고 돌아다니면서 글을 읽었다. 그들은 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바닷가에 그들이 있는 풍경을 그리면서, 강연을 마쳤다. 그려진 풍경마저 제약이 있었다. 끝나고 돌아서는 길에 행사를 진행했던 분이 다가와 말했다.

“작가님, 저 우는 거 알았죠?”

강연을 할 때면 사람들의 얼굴에서 감정 변화를 느끼지만, 울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이다. 가끔은 느끼고 때론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면서 사람의 감정을 듣는다. 나는 그의 질문이 오래 생각난다. 그는 어떻게 그가 울고 있었음을 내가 알고 있다고 확신했을까. 

내 옆에 있는 문은 여전히 비좁다. 어떻게 이런 문이 설계되어 있나.


*고령자나 장애인과 같이 사회적 약자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물리적이며 제도적인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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