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8일 목요일

스피커

스피커는 종이를 한참 들고 여러 번 읽었다. 그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스피커는 어떤 위대한 목적 때문에 광산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확실히 주술사 공동체에 몸담고 있었고, 그들이 하려는 일에 대해 아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벌써 그 일의 실행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가진 제약이 너무나 괴롭고 피곤한 것이어서 의지를 가지고 어떤 목적을 위해 실천하는 일 같은 것은 평생 불가능하리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제약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자신은 언제나 마지막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의 삶꼴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제약에서 뜻하는 장소라 함은 예컨대 고유한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가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제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스피커는 아무 생각 없이 잡화점에 들어갔다가 다음 날 주인 내외가 모두 죽어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주인의 안부를 살피러 들어간 이웃도 다음 날 죽어버렸다. 그런 식으로 마을 사람 다섯 명이 죽었다. 그가 태어난 이래 나가는 사람만 있고 들어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에 주민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유식한 사람, 주술과 제약의 존재를 알고 있던 사람에 의해 스피커는 지목됐다. 주민들이 그를 두려워하며 내쫓으려고 하였으나 내쫓긴 곳에서 사람이 죽어 나올 것이므로 내쫓을 수가 없었다. 스피커는 고립되었다. 한편 주민들은 스피커가 가진 주술에 기대를 걸었다. 유식한 사람은 말했다. 제약이 강력할수록 주술의 힘도 강력하다고. 주민들은 스피커의 손에서 토실토실한 암망아지가 히힝 하고 나타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스피커가 제약의 대가로 얻은 주술은 역시 위험한 것이어서, 주민들은 이제 그를 진짜 악마로 여기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은 하나둘씩 다른 마을로 떠났고 그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는 부모도 그를 떠났다. 스피커가 머무는 장소에는 방문자도 재방문자도 영원히 없고 억지로 가려고 하면 그다음 오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 그것이 그의 제약이었다. 그는 주민들이 남기고 간 것들로 연명했다. 몇 년이 지나자 남은 것이 없었다.

잡화점에서 조악한 지도 몇 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제약을 이해하고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근방의 지명을 샅샅이 외웠다. 스피커는 이름 없는 길이나 절벽, 숲만을 골라 돌아다녔다. 마을 근방을 서성이기도 했지만 들어갈 수는 없었다. 다만 스피커는 멀찍이에서 마을이 내뿜고 있을 활기를, 그들이 누리고 있을 웃음이나 마음 같은 것들을 상상으로 헤아려 볼 따름이었다. 

스피커는 그가 걷는 길들에 이름이 붙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스피커는 거지처럼 길과 길을 떠돌아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구했다. 마을을 떠난 주민들에 의해 스피커의 이야기가 퍼졌다. 스피커는 돌팔매를 맞거나 기껏 얻은 것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주술사 하나가 그를 만나러 왔을 때 그는 열세 살이었다. 스피커가 목을 매달기 직전이었고 세상이 얼음으로 뒤덮이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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