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0일 화요일

우울하고 친절하세요

몸살이 나고 힘들 때, 엄마는 그랬다. 한 번씩 크게 아프면서 늙음에 다가간다고. 사람이 늙을 때, 크게 아프면서 한 번씩 꺾이게 되는 거라고. 바로 지금이었다. 나는 바스러지는 광물이었고 온몸이 축축한 생물이었다. 지나간 이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떠다닌다.

엄마는 철야예배에 자주 참석했다. 먼 곳까지 다녔다. 엄마의 친구도 교회 사람이었다. 그는 명랑했고 친절했다. 똑똑한 아들을 두었고,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엄마는 자주 아팠고 예배에 참석하지 못할 때는 미안해했다. 나는 궁금했다. 누구한테 미안할까. 엄마의 친구는 철야예배에 참석했고 교통사고로 인해 즉사했다. 나는 이런 사실을 적어도 되는지 언제나 모르겠다. 

주변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모든 것이 이상하리만큼 건조해진다. 짧은 뉴스를 통해 찌그러진 차를 목격했다. 익숙한 교회 이름이 빠르게 지나갔다. 엄마는 그날 같이 참석한다고 했다. 그때 엄마는 내게 같이 갔어야 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할머니 벌초를 하러 갈 때, 엄마는 그에게도 인사한다.

“아들이 다녀갔나 보네. 깨끗하다.”

엄마가 보는 곳에 그의 무덤이 있다. 한쪽에는 할머니의 무덤과 한쪽에는 엄마 친구의 무덤이 같이 있다. 산의 빛은 여전히 좋다. 나무들도 여전하다. 나는 속으로 인사한다. 예전부터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그는 이해해줄지도 모른다. 아프면 별생각이 다 난다고 하던데, 그런 순간일 수 있다. 나는 자주 우울해지고 친절해진다. 모든 사람들이 가엾게 느껴진다.

서른이 넘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아이들도 선생님은 친절해서 좋다고 말했다. 의아했다. 인간의 슬픔을 이해한다면, 마흔이 넘어도 나는 친절할 것이다. 우울이 천성이라면 이것은 태도에 가깝다. 나는 사람에게 늘 미안하다. 엄마가 맞는 말을 했다. 그래서 역시 어른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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