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9일 목요일

어느 실내

화분 위에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반쯤 몸을 펴서 꼬리가 수직으로 서게 한 뒤 기지개를 켰다. 나는 그 앞에서 하품을 했다. 조금 즐겁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주말에, 집에 있는 소파에 누워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는 일은 즐거웠다. 그리고 졸립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시간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러나 시간은 갈 것이고, (저 고양이가 자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듯이)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서 나는 점점 늙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체감하고 있는 시간의 속도는 빨랐다. 나이를 먹게 되면 이렇게 된다고 하지. 나는 어느 신문 기사에서 그렇다는 사실을 훑어보기도 했었다. 점점 잠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화분 위에 있는 고양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고양이는 점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화분 위에서. 저 화분은 우리집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였다. 나는 장소라는 말을 좋아했다. 기억이 나는 여러 사건들을 나는 영사되는 영화를 보듯 하나씩 떠올려 갔다. 주말의 이러한 시간에 고양이를 보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는 일이 좋았다. 좋으면서 왠지 좀 불안하기도 했다. 그 불안은 내가 자리 잡고 있는 근저에서 작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뒤가 약간 꺼림칙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식탁으로 갔다. 토스트기를 작동시켜 식빵을 구웠고, 구워진 식빵을 먹으며 나는 다시 고양이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고양이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까 왠지 불안했던 의자 등받이에 다시 앉았다. 일하지 않는 한가한 날이었다. 나는 내가 할 만한, 집에서 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이 휴일의 집 안에서 나는 게을렀다. 씻지 않아서 머리도 떡 져 있었다. 나는 머리가 그렇게 되면 쉽게 티가 나는 유형이었다. 나는 고양이가 앉아 있는 화분 위로 잠깐씩 눈길을 돌리며 TV를 봤다. TV에서는 뉴스가 나오는데, 나는 뉴스가 싫어서 채널을 돌렸다. 그러면서 나는 희미하게 내 불안에 대해 생각했다. 한 손으로는 식빵을 잡고 있었고 다른 쪽 손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점점 늙을 것이다. 이 생각이 내가 느끼고 있는 불안이 아닌지 하는 추측이 생겼다. 물론 누구나 늙지만 나는 특히 이 자리, 이 장소에서 느끼는 그러한 불안일 수도 있는 생각이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기꺼웠다. 생각해 보면 불안에도 사람을 그 근저에 묶어두는 매력이 있는 듯했다. 나는 그러한 것들을 느끼며 한 손으로 잡은 식빵을 점점 뜯어 먹고 있었다. 고양이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했다. 저 화분 위에 자주 올라가는 고양이는 언제인지 모를 무렵 담장 위에서(아마 학창시절이었을 거다) 봤던 고양이와 닮아 있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