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세신사

그날은 휴가였고 목욕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대중목욕탕에는 포박*이라는 낯선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음료수를 들고 탕에 들어가기 전에 문앞에서 얼쩡거렸다. 매점 아주머니는 속마음을 읽듯 뭘 받을 거냐고 물었고 손목을 확인한 후 30분 뒤에 오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65번이라고 불렀다.

포박을 살 때 65번이었고 세신을 받을 때도 65번이었다. 마침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미국 드라마에 심취해 있었다. 맨몸에 현금을 봉투에 담고 수건으로 둘둘 감싸고 있는 게 마약 밀수를 하는 착각마저 들어 헛웃음이 났다. 이런 비약은 좀 심하지 않은가.

물속에서 또렷해지는 생각이, 어째서 물 밖으로 나가면 맹탕이 되는지 골똘히 느끼면서 이벤트탕과 온수탕을 오가며 몸을 불렸다.

세신을 받는 동안 나는 온순하게 몸을 맡겼다. 옆으로 누우라면 옆으로, 다리를 움직이라면 그 자세로, 아주머니 손길에 미끄러지면서 조금은 익숙한 척 눈을 감고 있었다. 리드미컬하게 들썩이는 몸을 느꼈다. 날렵한 손길에 탄복할 뿐이었다.

“부지런한 것도 타고나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름 모를 장미가 다 폈다잖아. 꽃구경도 못 가고.”

세신사들이 이름 모를 장미인지, 이름 없는 장미인지, 말하고 있었다. 귓가에 물이 들어가 먹먹했다. 그는 알이 굵은 장미 귀걸이와 원석 목걸이를 걸쳤고 업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멋쟁이네, 잠시 생각했다. 그가 미지근한 물을 온몸에 부어주었다.

“언니, 이거 가져가야지.”

그는 나를 65번 언니라고 불렀다. 몸이 매끈했다. 숙련된 솜씨로 부드러워진 몸. 밝은 물속에서 오래 떠있었다. 유연한 것처럼, 혹은 방금 영혼을 잃은 익사체처럼. 

세신을 한 번도 안 받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머리를 말리며 세신사들의 방에 걸린 속옷을 봤다. 작업복이어서 그런지 단단해보였다. 65번은 신발을 갈아 신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다 진 장미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벌써 8월이었지만.



*포박
(포카리스웨트와 박카스를 합친 음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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