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통에도 자기의 잇속만 챙긴 탐관오리를 비판하는 시를 써보시오, 라는 문제가 나왔을 때 한선생은 턱을 괸 손을 이리저리 돌리며 고심했다. 그는 탐관오리라는 단어를 설명해주고, 그 당시 백성의 심정으로 쓰면 된다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애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무것이나 쓰고 보는 친구들인데 그날은 유독 머뭇거렸다.
“선생님, 저 시는 정말 못 쓰겠어요.”
차라리 분석하면 안 돼요? 아니면 제가 쓰고 나갈 테니 선생님은 제가 강의실에서 나가면 읽고 제가 들어왔을 때는 시에 대한 한 문장도 이야기하면 안 돼요. 아이들은 으악, 악, 비명을 질렀다. 보통 저학년 친구들은 동시도 곧잘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부끄러워할 일인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뭐가 부끄럽지. 이들의 괴발개발로 쓴 글은 한두 번 보는 일이 아닌데 새삼스러웠다.
아이들은 양반을 욕하는 시를 <쇼미더머니>처럼 생각했다. 욕 써도 돼요? 안 돼. 그럼 강아지의 아이야, 이런 말은 돼요? 안 돼. 그 당시에도 욕이 있었어요? 저잣거리에 매달릴, 이런 말들은 있었지. 짧게 써도 돼요? 응. 한 줄 써도 돼요? 아니.
몇몇 애들은 이런 표현도 썼다.
“백성들한테 꿀 빠는 양반들아.”
한선생은 그저 마실 나오듯이 그들이 쓰는 걸 구경했다. 몇몇 친구들이 자신이 쓴 걸 확인받았다. 한선생은 와, 잘했네, 괜찮네, 라는 말을 해주면서 그들을 다독였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글은 있었다. 그 시는 <꽃순이와 개똥이>였다.
아버지는 개똥이를 버렸다
사람 먹을 게 없으니 개부터 버려야 한다고
개똥이가 서럽게 울었다
옆집 꽃순이가 죽고
마당에 묻혔다
꽃순이 아빠는 전쟁터에 나갔다
꽃순이 아빠는 마당이 없어서 울퉁불퉁한 땅에 묻혔다
묻을 땅이 부족했다
아버지는 기다리자 했다
열한 살짜리 아이가 이런 글을 쓰고 있었고, 한선생은 감동을 느꼈다. 감동적이네, 라고 말하자 옆 친구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못 쓰겠어요, 봐봐, 글씨도 예쁘잖아, 그들은 내가 뭘 읽었는지도 모르면서 말한다.
아버지는 기다리자 했다
<꽃순이와 개똥이 부분>
열한 살짜리 아이가 이런 글을 쓰고 있었고, 한선생은 감동을 느꼈다. 감동적이네, 라고 말하자 옆 친구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못 쓰겠어요, 봐봐, 글씨도 예쁘잖아, 그들은 내가 뭘 읽었는지도 모르면서 말한다.
한선생은 최근에 본 영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친구와 대화를 나눴었다. 친구는 “이거 정말 찐사랑이구나, 싶더라.” 말했고 그는 “나는 다시 묻게 되더라.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뭐라고 부를 건데?”
그때의 장면이 지나가는 건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문득 그는 생각했다. 이 아이가 쓴 게 시가 아니라면 이걸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꽃순이를 쓴 어린 친구는 한선생의 시선을 느꼈는지 “선생님, 저 시가 아닌 것 같아요, 이래도 돼요?*” 물었다.
꽃순이를 쓴 어린 친구는 한선생의 시선을 느꼈는지 “선생님, 저 시가 아닌 것 같아요, 이래도 돼요?*”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