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일 금요일

인어의 뼈

이 아이들은 마르크스를 안다. 경제학자 마셜을 안다. 가끔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공자나 순자에 대해 떠들기도 한다. 그런데 왜 고전 동화를 모를까? 
대부분 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 거 아닐까요? 이선생이 말했고 그런 아이들을 두고 고전을 패러디한 작품을 논하자니 영 껄끄러웠다. 영유*를 다녔든 외국 학교를 다녔든 뭔지는 알아야 뭐가 바뀐 건지 찾아낼 수 있지 않나.

분명 아이는 <심청전>을 안다고 했다. 한선생은 들었다.

“옛날 옛적에 심청이가 살았는데, 효녀라서요. 아버지가 앞을 못보니까 눈 뜨게 하겠다고 쌀 삼백석이랑 목숨을 바꿔서 바다에 빠져요.”

“그래. 계속 말해볼래?”

“바다에 빠져서 용왕을 만나는데요. 용왕이 병이 있어 간을 구해오면 아버지 눈을 뜨게 해준다는 거예요.”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토끼를 만나러 다시 육지로 가는데요.”

“진원아. 혹시 자라 등장하니?”

“네? 맞아요.”

한선생은 <별주부전>의 결말과 이본에 실린 몇몇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얼굴이 붉어졌다. <심청전>의 간과 <별주부전>의 간을 엮어 새로운 서사를 만들다니 ‘아주 창의력이 뛰어나구나.’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는 패러디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심청이는 몰라도 인어공주는 알지 않을까?

“선생님, 저 정말 인어공주 내용을 모르는데요.”

이 한 마디에 애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를 머저리 취급했다. 애들은 저마다 쫑알대며 “책을 읽어.” “너 금붕어냐?” 무해하면서도 순수하게 공격적인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한선생은 다른 친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인어공주는 보기드문 새드엔딩인데, 알고 있니?”

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외쳤다.


“죽어요?”


도대체 뭔 내용을 알고 있는지 예상이 가능하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월트 디즈니를 본 세대인 거다.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된다는 것도 모르겠지. 한선생은 다시 줄거리를 이야기해줬다.

“옛날 아주 옛날에, 그래. 너희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래야 동화겠지? 인어공주가 살고 있었어. 그는 우연히 물가 근처에서 왕자를 발견해. 근데 하필 왕자가 멋있었던 거지.”

“선생님. 옆에 하인한테 반하면 어떻게 돼요?”

“왕자 머리 좀 치워 봐. 이런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었겠지? 그러나 이런 동화들이 그렇듯 다행히도 왕자는 근사했고 그가 탄 배가 난파되어 인어공주가 구해주게 된 거야”

“근데 좀 이상한 게 왕자들은 물에 빠지면 허우적대지도 않고 왜 바로 기절해서 둥둥 떠요?”

이 말에 몇몇은 한심하다는듯 “생존 수영을 못 배웠나보지.” 떠들었다.

“암튼 그를 구한 뒤 얼굴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기척이 들리지 뭐야. 그래서 숨어서 봐. 낯선 공주가 왕자를 발견한 거야. 왕자는 그 공주가 자신을 구했다고 생각하지.”

“와. 공주 에바*다. 속인 거 아니에요? 왕자 조금 모자란가봐.”

“이웃나라 공주도 그리 생각했을 수 있지. 속이려던 게 아니라 조금 어벙하지만 원래 이런 왕자인가 보다 하고.”

한선생이 한 마디씩 할 때마다 아이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인어공주는 글을 못 써요? 말을 못하면 읍, 읍, 하면서 몸을 쓰면 되지. 답답해.” “아니, 언니들이 칼을 구해다 줬잖아요. 머리카락과 바꿔서 기껏 구해왔는데 왜 못 찔러요.”

“많이 좋아했나보지.”

“선생님. 저는요. 그 칼로 왕자를 백 번도 더 찌를 거예요.”

“아. 지온아. 백 번은 좀.”

아이들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한선생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인어공주의 이야기가 맞긴 한지 의심스러웠다. 너무 오래전에 읽고 본 내용이다. 그들은 상온에서 물거품이 되는지, 아니면 물속에서 공기방울의 형태가 되는지 멈추지 않았고 그때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마지막 질문을 했다.

“인어의 뼈는 어떻게 생겼어요?”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공주라면 상체는 사람의 뼈와 비슷하고 하체는 물고기 같지 않을까.”

‘예를 들면 고등어 같은?’ 말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 궁금하면 생선 먹을 때 가시를 잘 살펴보렴”

아이들은 저마다 인어공주에 대해 떠들었고 한선생은 그날 고등어조림을 먹으면서 인어의 뼈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영유: 영어 유치원
*에바: 오버하다를 달리 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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