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4일 일요일

탄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언어를 알아가는 것. 새의 이름을 소리내어 암기하는 것. 높고 깊은 휘파람 소리를 듣고 새의 시선을 떠올리는 것. 지금 그의 목덜미에 달라붙은 벌레의 딱딱한 등갑을 건드려보는 것.

지렁이가 기네요. 뻔한 말을 물수제비 뜨듯 상대방에게 던져보는 것. 청둥오리의 물장구 사이에 있는 붕어의 입을 오래 바라보는 것. 저 붕어는 오리를 삼킬 수도 있겠어요. 트랙을 떠도는 말과 말 사이를 밟아보는 것. 귀와 어깨를 멀리 하고 턱을 당겨 힘주어 걸어보는 것.

탄천을 산책하며 생각했다. 개미, 지렁이, 볕, 자전거, 개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구나. 살아있는 것도 조금은 그럴싸하다고. 동방삭도 이런 마음으로 삼천갑자를 살았던 거 아닐까. 그러다가 실없이 숯을 씻었던 이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끝내 건드려본 거 아닐까.* 

점심시간, 벤치에 앉아 새의 기척을 찾는 것. 이건 호랑지빠귀 같아요. 광공해에 부딪힌 새를 보다가 “새들이 토마토였다면 사람들은 바뀌었을까요?” 끝끝내 질문하고 마는 것. 

만나자마자 이별한 여름새, 그게 우리의 목소리 같았다. 





*삼천갑자 동방삭. 대략 18만 년을 살았다. 동방삭을 잡기 위해 저승사자들이 숯을 얻어 시냇물에 빨았고 그 모습을 본 노인이 삼천갑자를 살아도 이런 꼴은 처음 봤다고 말을 걸었다가 덜미를 잡혀 끌려갔다고 한다. 그 장소가 탄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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