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3일 화요일

우리 시대의 문학적 상상력

나는 어린 친구들을 가르친다. 저학년일수록 종말, 핵, 총 이 세 단어를 좋아하고 언제든지 마지막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신을 부정하기도 한다. 신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없다고 증명할 수 있는지 질문이 오고 가지만 오늘은 과학에 대한 책을 읽고 수업을 하는 것이니 결국 딴짓을 하고 싶을 때 창의력은 증폭이 된다는 하나의 장면을 보여준 셈이다. 이들은 아마겟돈이라는 단어는 모르지만 머지않아 환경으로 인해, 공장식 축산을 만든 인류로 인해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갖고 있다.

여기에 신이 있나요? 이 질문에는 있다면 신은 사람들을 이렇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열 살짜리의 말이기도 하다.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린 이유는 그날 우리가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가 속보로 올라왔고 미국 독감의 사망자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중간 숙주가 천산갑인지 아르마딜로인지, 어떤 정보를 감추고 있는지에 대해 모두 말하고 있는 날에도 우리는 앉아서 수업을 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과학을 배우고 철학을 배우고 문학을 배우고, 그들은 또래들을 통해 유튜브도 배운다. 지금은 신의 증명까지 말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교재와는 상관없는 말로 떠들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는 신이 있다면 자신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 엎드려 절하고 자기가 먼 길을 떠나 신선한 물을 한 잔씩 바치겠다고 과장스럽게 창문을 향해 절을 한다. 그는 어째서 물을 선택했고 굳이 창문을 향해 절을 한 걸까. 그는 신이 창문 너머에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을까? 그에게 신이 없다고 증명해볼 수 있겠냐고 물으면 그는 다시 수업에 집중할 것이다.

고대의 사람들이 개기일식을 두고 커다란 괴물이 해를 삼켰다가 토하는 과정이라고 믿었음을 알려준다. 이 내용을 들으면 그들은 비실재물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괴물의 크기나 혹은 입의 크기를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아까까지 신에 대해 논하던 애들이 맞는지 싶을 만큼 그들은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이들과 태양의 온도가 얼마나 되는지, 그 뜨거운 걸 삼킬 수 있는 식도가 있는지, 토한 것인지, 배설한 것인지 그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뒤섞인 초월적인 세계를 펼쳐낸다. 상상력과 감성으로 이루어진 형태가 재잘댄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친구도 있다.

옛날 사람들 참 멍청했네요.

그 당시에 사람들은 왜 믿었을까? 이들은 200세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앞으로 20배만 더 살면 비슷한 말을 본인들이 들을지도 모른다. 시대의 시선을 생각해보는 건 의외로 즐거운 일이다. 인류가 반복되고 있다는 증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때의 우리는 왜 믿었고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는 걸까?

아무리 똑똑해진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어른들이 내준다는 숙제는 엇비슷하다. 그중에서 반복 되는 주된 내용이 있다면 바로 꿈을 주제로 한 페이지의 글을 쓰라는 것이다. 보통은 직업을 꿈이라고 적어오지만, 자신이 원하는 어떤 과정이어도 괜찮다고 귀띔을 해주면 글의 결은 달라진다.

어떤 친구는 자신의 꿈이 구름이라고 적었다. 이 친구는 자신은 처음에는 물이었다가 훗날 구름이 되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유유히 떠다니는 게 꿈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약간의 이성적 판단이 들어갔는지 전문직종을 하나 쓱 넣고 다시 그 일을 했다가도 하늘에서 쉬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느끼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친구들은 자신이 이런 꿈을 적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때가 많다. 인상 깊었다고 말하면 “제가 그런 글을 썼단 말이에요?” 묻는 게 대부분이다.

이들은 시대에 맞게 속담을 바꾸는 것도 잘한다. 예를 들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을 한 친구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판타스틱하다’라고 적었다. ‘사내 대장부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라는 속담은 ‘사내 대장부가 부엌에 들어가면 좋다'로 바뀌어 있었다. 특히 나를 웃게 했던 건 좋다, 부분인데 아직은 글씨가 정돈되지 않아서 ‘좋다’만 크게 강조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런 친구들에게 문제를 내본다고 하자.

1950년대에 호주에 급격하게 늘어난 토끼를 제거하기 위해 사람들은 믹소마 바이러스를 살포했습니다. 토끼의 99%를 죽이고 수를 줄였다고 좋아했지만 살아남은 일부 토끼들이 바이러스에 내성이 생기면서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납니다. 이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적어보세요.

몇몇 친구들이 내게 좋은 답을 주었다. 한 친구는 정답으로 ‘토끼처럼 살자’라고 적어두었다.

나는 다시 생존을 앞에 두고 이야기한다. 어디에서 어떤 일로, 우리는 어떤 일을 벌인지도 모른 채 놓여 있는 생명체.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어린 친구들이 귀하게 여기는 쉬는 시간까지 미룰 수 있는 건 오로지 이야기를 생산할 때만 가능하다. "까짓껏 쉬는 시간을 미루죠. 더 말해주세요." 옛날 이야기를 해준다거나, 사연을 들려준다거나 아니면 “조금 커서 들어. 대략 십 년 후?” 내가 말을 안 하려 할 때.

그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더 이상의 질문도 하지 않고 집중한다. 이 친구들은 창의적이고 그들의 질문은 뛰어나지만 자신의 생각이 굉장히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쓸 것이다. 매우 즐겁고, 때로는 아픈 이야기를.

이런 시간을 공유한 것을 기록하면서 바이러스의 이동 경로나, 해의 움직임이나, 토끼의 생존력이나, 신의 존재 유뮤에 대한 열 살짜리를 위한 답변이나 혹은 내가 쉬는 시간에 저 멀리 화성에서 감자를 심고 있을 우주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며칠 사이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에서 4관왕을 했다는 소식까지 접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지는 세계에서, 이 경험을 공유한다.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것이라서.



*여기에 등장하는 친구들은 우리가 어떤 수업을 했는지 모르고 헤어졌다. 어린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자신의 질문을 기억할까? 나는 출근 길에 그들의 질문과 얼굴을 떠올리며 걷는다. 여전히 그렇다.

신이 있다면 창문에 물을 뜨고 절을 하겠다던 K
구름이 되어서 지구 멸망을 기다리겠다던 J
토끼처럼 살자, 적고는 토끼 출판사를 차리겠다며 벌써 두 명의 친구 직원을 두었던 Y
사내 대장부가 부엌에 들어가면 좋다, 글씨가 유독 돋보이던 B
태양을 삼킬 수 있으려면 괴물의 식도가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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