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2일 목요일

털보네 만물상

망원에는 털보네 만물상*이 있었다. 아저씨는 중고물품에 가격을 투박하게 적어놓고 몇몇 물품은 가져가면 꽁짜!* 라고 적어두기도 했다.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폐업한 가게의 컵이 즐비한 날도 있고 책장이 고스란히 있는 경우에는 책을 골라 구매하기도 했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물품은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장기판을 샀고 때로는 시집을 서비스로 받기도 했다. 시집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냥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의 후함이 느껴졌다. 시집이 있는 만물상.

그날은 애견용품이 많았다. 애견 기저귀와 약을 먹일 때 쓰는 투입용 주사기, 작은 방석, 개의 여름 옷, 겨울 옷, 오래 물고 놀아 색이 벗겨진 장남감, 유산균, 개와 함께 지낸 사람의 손길이 느껴졌다. 개를 보내고 남은 주인이 떠올랐다. 개의 흔적이 너무 많았다. 집을 꽉 채우고 있었을, 구석을 기꺼이 내주었을 법한 물건을 보다가 돌아섰다. 개의 아픔과 사람의 아픔이 같을 수 있을까.

날이 더웠다. 작업실에 돌아와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할 수 없는 일 주변에서 어그적대면서, 개의 꼬리를 그렸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면서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던, 우리 개가 생각났다. 그 개는 비가 오는 날 왔고 비가 오는 날 떠났다.

털보 아저씨는 비가 올 것 같으면 비닐을 덮어두었다. 비닐의 유무로 그날의 날씨도 알 수가 있었다. 때로는 맞았고 때로는 틀렸다. 그럼에도 그가 친 비닐을 보고, 비닐 안에 들어가 있는, 나는 꽁짜다!를 앞에 두고 오래 시간을 보냈었다.


*털보 중고 재활용센터. 
*그는 꽁짜,라고 적었다. 가끔은 이것도 꽁짜, 나는 꽁짜! 등 다양한 문구를 적기도 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