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7일 월요일

달이 잘 보이는 자리에 있어

최근에는 술자리에 갈 일이 없다.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나는 술자리에 가서 술도 제대로 못 마시면서 자리를 채우고 있는 기이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누군가는 그런 사람이 더 무섭다고 했다. 누군가는 우리는 친해지기 어렵겠네요, 라고 말했다. 자리를 떠야 하는 타이밍을 몰랐고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뼛속까지 유교걸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 커다란 테이블에 안주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흡연자의 몫도 나였다. 접시에 놓여 있는 젓가락, 붉은 국물이 묻어 있는 냅킨이 반쯤 접혀 선풍기에 흔들리는 걸 보는 남겨진 사람. 6인용 테이블을 혼자 지키는 사람. 대부분의 술자리는 몸이 힘들었던 기억뿐이지만 취기가 올랐을 때 예상치 못하게 들려오는 음악 같은 걸 즐기지 못하는 건 아쉽다.

선생님들과의 자리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어리숙하다. 그때도 나는 자리를 지키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 요령껏 자리를 이동하지 못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동하는 것을 구경한다. 때로는 앞에 놓인 치킨의 살만 유심히 발라 먹는다. “얘가 그런 애가 아닌데.” 나를 데리고 온 누군가가 부끄러울 만큼 집요하게 먹기도 한다. 이런 나를 보고 “그게 컨셉이냐?” 물어본 사람도 있다. 도대체 이런 걸 왜 컨셉으로 잡는지? 그러다가 문득 내가 앉은 자리에서 두 칸 옆으로 이동하게 되면 달이 잘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자리를 이동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재빠르게 그 자리로 옮겼다.

표정이 밝아졌다는 말에 “이 자리에서는 달이 예뻐서요.”라고 말했고 옆에 그는 “정말 시인이네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의 뜻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조롱이든, 칭찬이든, 취해서 아무 의미가 없든 간에. 그때는 머쓱했고, 속으로만 생각할걸 그랬나, 싶었다. 그래도 달이 예뻤으니까 됐다.

자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건 일터에서 자리를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지난주에 퇴사한 동료의 자리다. 그는 자리를 떠나면서도 내가 서랍을 잘 쓸 수 있게 메모를 남겨두었다. 그는 내게 정답 주머니 같은 사람이었는데.

일터에서는 사소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물어보기도 애매한 문제들이 생긴다. 나는 그런 질문이 생기면 그에게 물었다. 가볍게 톡톡 두드리면 빛깔 고운 정답 통이 굴러나오듯이, 중요한 단어를 건네주는 사람이 존재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융통성 있게 해결하라, 가 정답이지만 나는 타인의 오락가락한 감정의 곡선을 같이 타고 가다가 갑자기 나뒹굴며 떨어져 바닥을 짚고 있는 그 기분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니까 어쩔 수 없다 해도, 수업 때까지는 마냥 행복하게 웃고 있었는데 쉬는 시간 이후 세상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가 내 반일 때, 같은 반 아이의 목소리가 커서 자기 아이가 괴롭다는 학부모의 컴플레인을 받을 때, 아이가 사춘기라고 엄마와 아이가 서로 말을 하지 않아 결국 가운데에서 전달자가 되어 버렸을 때, 모른 척할 수도 없고 막연한 책임감을 질 수도 없는 애매한 것들의 정답을 찾고 싶었다.

그는 내 감정이 다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건 선생님의 비법이라 적지 않습니다. 절 만나면 물어보세요.) 합리적이었다.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즐겁게 배웠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뛰어난 아이들을 만나서 숟가락을 얹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내가 너희보다 일찍 태어나서 가르치고 있을 뿐이라고, 세상에, 이런 말을 하는 선생이 내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 결혼을 한다.

나는 그를 만나서 “축하드려요.” 인사를 했고 그는 “아, 뒷이야기는 못 들으셨군요?”라는 대답을 받았다. 그는 결혼을 하면서 오랜 직장을 떠난다. 그가 남성이었기에 퇴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단 것이, 생각의 폭이 좁았다는 증거 같아서 부끄러웠다. 그는 떠날 때도 경쾌하게 떠났다. 좋은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소식을 갖고 연락할게요.” 이 말에 “그렇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주세요.”라고 말했다. “돈 빌려달라는 말이면 어쩌게요?” 이 말에는 “적당하다면 괜찮아요.”라고 답할 수 있었다. 나는 저런 말에는 언제나 농담을 섞지 않는다. 보통 상대방은 농담으로 듣지만.

그의 책상에 앉아 그가 봤을 법한 풍경을 본다. 책상은 좁고 벽은 깨끗하고 그의 서랍에는 예전에 쓰던 필기구가 정갈하게 놓여 있다. 여기에서는 뭐가 보이려나? 나는 보이지 않는 창문을 그려낸다. 여기서도 달이 보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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