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5일 금요일

포도의 사람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떨어진다. 나는 그것들을 바구니에 주워 담는다. 저 멀리에 신부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 사람이 가까이 온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말한다. 그날 있었던 일들이 어땠으며, 포도를 얼마나 많이 주워 담았는지를. 바구니 안에 든 것은 검은 포도들이다. 그 사람은 양해의 손짓을 하고는 내 바구니에 손을 가져가 몇 개의 포도를 집는다. 그리고 하나씩 입에 털어 넣는다. 입맛에 맞으신다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다. 입맛에 맞았노라고,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한다. 그것은 신을 섬기는 이들이 가져야 할 자질 중에 하나다. 자연의 산물, 특히 나무 위의 생명이 다해 아래로 떨어지게 된 것들을 이렇다 할 감정의 동요 없이 받아들이는 것. 나는 그 사람에게 항상 하던 말을 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으며, 가능하다면 그 성당에는 다음에 가 보고 싶다고. 사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한 성당을 운영하는, 아니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가끔 이 포도 농원에 놀러 온다. 아니, 놀러 오는가? 그 사람도 입을 열어 항상 하던 말을 한다. 신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그런 말을 할 때 그 사람은 꼭 등 뒤에 날개가 달린 권 천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천사들의 계급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권 천사라는 말은 천사 앞에 권 씨가 성으로 붙어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나는 바구니에 손을 담아 검은 포도들을 한주먹 쥔다. 그리고 그것들을, 헨젤이 그레텔에게 따라올 길을 알려주려 빵 조각들을 일정한 거리로 남긴 것처럼 나도 하나씩 바닥에 떨군다. 그 신부는 이쪽의 손길을 가만히 바라본다. 내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헨젤처럼 누군가가 이곳으로 따라올 수 있게, 당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단지 다람쥐나 청설모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그들은 농원의 과실에 해를 주지 않는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이 하나도 없으니만큼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신부도 이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신부가 입을 열어 말한다. 그런데 신이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오늘까지라고. 나는 의아해져서 신부에게 되묻는다. 그럼 나는 오늘 안에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분명 신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부가 이어서 말한다. 사실 성당을 이전하게 되었노라고. 그 때문에 국경선을 넘어가야 하는데, 그러면 당신이 찾아올 성당이 없어지게 되는 거라고. 신부의 말은 분명 듣기에 좀 이상했지만 나는 가끔씩 찾아오던 그를 이젠 못 만나게 되는 것에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신부에게 오늘은 이 포도 농원의 깊숙한 곳까지 한번 같이 들어가 보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포도 농원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걱정됩니다. 그런가요?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는 말씀입니다. 그렇다. 신부가 찾아오는 것이 그 때문이었는가, 나는 그저 이 포도 농원이 좋아서, 아니면 내가 대화 상대로서 적합하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십니까? 나는 물었고 그 신부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웃었다. 나는 그 신부를 농원 입구까지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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