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1일 월요일

사랑의 순간

플란넬 셔츠를 입은 한 아저씨가 걷고 있다. 그의 이마는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것처럼 보이고, 코에는 코피가 잠시 났던 것인지 왼쪽 콧구멍에 휴지 뭉치를 꽂고 있다. 그는 주택가의 어떤 건물, 2층에는 아이들을 위한 미술 학원이 있고 1층에는 코인 세탁소에서 세탁을 마친 사람들이 빨랫감을 들고나오는, 그런 광경의 건물 앞에서 잠시 멈춘다. 여기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러나 확연히 그들이 서로 사귀는 사이란 걸 알 수 있는, 겉으로는 고등학생들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잘 보면 고등학생들이란 걸 알 수 있는 이들이 계단에 앉아서 포옹을 하고 있었다. “이런, 서로 사귀는 모양이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저씨의 목소리였지만 그러나 확연히 느껴지는 공기의 진동이 저 멀리까지 닿은 듯, 서로 포옹을 하고 있던 고등학생들 중에서 나이가 좀 더 어려 보이는 한쪽이 포옹을 풀고 아저씨에게 대답했다. “와, 나처럼 플란넬 셔츠를 입고 계시는군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나는 시력이 별로 안 좋다) 그 말을 하면서 소매를 주섬주섬 꺼내 들더니 반대쪽 손으로 화살표를 만들어 그것을 가리킨 것이 남성 쪽이란 건 알아볼 수 있었다. 아저씨가 입을 열어 말했다. “이런, 자네들 지금 내 가까이에 있는 미술학원에 다니는가? 공부 대신 그림 그리는 일을 배울 수도 있는 노릇이지. 난 지금 이곳에 다닐까 생각 중이라네. 왜냐하면 아이들을 위한 곳처럼 보이거든.” “하하. 꽤나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시는군요. 그런데 조금 부끄럽습니다. 우리들이 서로 사귀는 사이란 걸 보여드리고 말았군요.” “아니, 그것이 아니라네. 나는 자네들을 멀리서 보고 왠지 나까지 부끄러워져 잠시 말을 걸고 만 것이라네.”(하지만 가장 부끄러웠던 건 그들을 묘사한 내 쪽이었다) “저런. 그런데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말을 하기가 힘듭니다. 혹시 거리를 좁혀서 얘기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난 이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네.” 그 말을 끝으로 이마에 땀이 나고 콧구멍에 휴지 뭉치를 넣은 아저씨는 가던 길로 사라졌다. 나는 묘사를 마치고 집에 가서 언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있잖아, 언니야. 오늘 묘사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둘이 연애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이 나왔어. 그리고 그 둘한테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더라? 그러더니 거리가 멀지만 그중에 남자인 쪽이 똑같은 플란넬 셔츠를 입고 있다면서 아저씨에게 화답했어. 그 아저씨는 어쩐지 상황을 무마하려는 것처럼 보였어. 그래서 묘사를 하고 있던 나도 그냥 그 아저씨를 보내주기로 했어. 물론 그때까지 그들과 아저씨의 거리는 절대로 좁혀지지 않았고 말이야.” 언니가 말했다. “그래. 묘사를 하면서 즐거웠니? 그리고 둘 사이의 거리를 설정한 이유는 뭐지?” “어쩐지 부끄러웠기 때문이야. 즐겁긴 즐거웠는데... 서로 사귀고 있는 그 둘 사이의 애정은 그 아저씨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처럼 보일지 잘 모르겠었어. 요즘에는 잘 모르겠는 일들의 투성이야. 그래서 내가 묘사를 하려는지도.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네가 좋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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