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0일 목요일

당장 떠나기

나는 자연경관을 즐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도심 속에서는 숨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나는 작업을 하려고 카페에 갈 때 꼭 식물들을 많이 길러놓고 있는 카페를 찾아다녔다. 왜냐하면 식물 곁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그 식물들은 관상용이지만 실제로 가까운 자리에 앉으면 나무 냄새, 풀 냄새가 났다. 나는 나무 냄새와 풀 냄새를 좋아했다! 나무 냄새와 풀 냄새는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 다르다. 나는 그걸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조상의 묘가 있는 선산의 냄새도 나는 기억한다. 그때 맡았던 냄새는 나무 냄새, 폴 냄새가 아니었다. 바로 산의 냄새였다! 하지만 그 산의 냄새에는 조상의 묘에 절을 하려고 피워 놓은 향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향냄새를 꽤 좋아하는 것 같지만 산 냄새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온갖 풀과 나무들의 냄새에 더해 흙냄새까지 났기 때문이다. 나는 흙냄새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 온 뒤 젖은 땅에서 나는 비 냄새는 꽤 마음에 들어 한다! 갓 성인이 되었을 무렵 나는 향수 한 병을 산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향수의 뚜껑을 열어서 냄새를 맡아보니 아주 인공적인, 인공적인 냄새가 났다(내가 향에 대해 잘 묘사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는 향에 대한 묘사에 자신이 없다). 그 인공적인 향은 어쩐지 깨끗한, 아주 깨끗한 공중화장실 냄새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나는 내 몸에서 공중화장실 냄새가 나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기에 그 향수는 안 쓰고 서랍에 넣어두었다. 인공적인 향기는 도심 속의 매캐하고 답답한 공기를 연상시킨다. 나는 냄새가 사람으로 하여금 멀리 떨어진 기억을 확 들게 하는 연상의 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봄날에 걸으면 거리에서, 특히 나무와 풀들 주변에서 나는 냄새가 의식된다. 왜냐하면 봄은 공기가 바뀌는 계절이어서인 것 같다. 가끔 봄날의 그런 냄새를 맡다 보면 아주 예전의 일이, 특수했던 어떤 기억이 그곳으로 다가갈 수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은 아주 갑작스러운 일이다. 나는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 동네에서 어릴 때 살았고 그래서 무언가가 타는 매캐한 냄새에 익숙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그런 매캐한 냄새를 맡았을 때 그런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몇 년 전쯤 평생 걸려본 적 없던 비염이 찾아왔고 그래서 나는 냄새 맡는 기능이 아주 약해졌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시 좀 나아졌다. 이젠 약도 안 먹는다. 그건 꽤 기쁜 일이면서 동시에 병이란 것을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병이란 무엇일까? 자연에서 유리된 이 도심 속의 삶이야말로, 드문드문 살아서 땅에 뿌리내린 관상용 나무와 풀들을 보면서 생각하건대, 일종의 병이 아닐까? 나는 자연경관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산에 가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산에서는 위에서도 말했지만 여러 냄새들의 혼합 속에 흙냄새도 나기 때문이다. 나는 흙냄새가 싫었다. 그러면 꽃향기는 어떠한가? 꽃! 그것이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자연 경관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여 이 꽃에 대한 생각을 하기까지 무의미한 생각의 연쇄를 거쳤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시에 내가 언제 한번 걷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런 꽃길이 있었다. 거기는 풀과 나무들과 함께 야생화들이 많이 자리한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쓰이지 않는 철길이 있다. 그 선로를 쭉 따라서 걷다 보면, 주택가가 나오고 그건 꽃길이 끝났다는 뜻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그 주택가를 통해 꽃길로 입장할 수 있다. 나는 택시를 부르지는 않고 거기까지 가는 싼값의 교통편을 검색해 봤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어서 그냥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런데 벌써부터 도심 속의 답답한 공기가 내 앞으로 다가와 있는 것 같아서 난 생각을 바꾸었다. 당장 가야겠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