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2일 목요일

대부호

그 대부호에겐 불행한 일이었다. 은쟁반 위에 수북이 쌓인 감자튀김을 집어먹으며 대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의 일로 그는 전 재산의 반을 잃었다. 물론 남은 재산만으로도 그야말로 수많은 돈이었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잃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대부호는 저택에서 식객으로 머물고 있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을 잠시 초청했다. 그리고 카드 점을 쳐달라고 부탁했다.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카드를 테이블 위에 놓고 몇 가지 사항들을 대부호에게 물었다. 카드 점이 시작되고 순서대로 뒤집힌 십자가, 말 탄 왕, 정원에 피어 있는 덤불 장미, 그리고 카페 야외석에 앉아 있는 작가의 카드가 나왔다. 그것들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설명을 시작했다. 뒤집어져 있는 카드를 하나씩 원래대로 돌리면서 테이블 너머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알아야 할 사실, 그리고 몰라도 상관없는 것들, 그리고 이 카드들이 알려주는 앞으로의 방향 같은 것들로 이 잠시의 시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대방의 제어하에 있는 어떤 분위기의 장악은 심란했던 대부호의 마음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는 듯했다. 먼저 대부호는 어젯밤의 그 일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매우 궁금해했다. 그 시점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돌보다가 그 소중한 무언가가 대부호가 원하는 것과는(그리 기대한 것이 없었으나) 이탈된 방향으로 영향력을 끼친 것에서 시작되어 대부호가 은연중에 잊어버렸던 희미한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이제 자신의 중요한 감정들 중에 하나를 잊어버린 운명의 현전 아래(괴테의 소설에 나오는 것과 같은) 대부호를 서서히 납득시켜 가는 과정 중이라고 했다. 이러한 소실점은 아주 중요한 것이며 간단히 말해 대부호는 이러한 진행 과정 중에 대처하기 위해서 잊어버린 과거의 일을 상기하는 게 중요하므로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서 기억을 되살려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대부호는 자신도 잊어버린 과거의 일이 어째서 어젯밤의 일과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분위기에 어떤 식으로든 압도되어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대부호는 은쟁반 위에 쌓인 감자튀김을 카드 점을 치는 여인에게 권했다. 짠맛이 나며 고소하기 때문에 먹을 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사양했다. 그리고 어젯밤의 일과는 관련 없지만 대부호가 놓인 현재의 운명 같은 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첨언하기 시작했다. 대부호는 그것들을 아주 귀담아들었고, 중간중간 노트에 필기까지 했다. 그 이후에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은 자신이 머물던 거처로 되돌아갔다. 대부호는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그 말을 기억하게 된다. 그것은 잠깐의, 그리고 사소한 불행으로 비롯된 일이었으므로 그렇게까지 납득 못할 일은 아니라고. 대부호는 그런 말을 들은 뒤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가슴이 먹먹한 듯 답답하여 뛰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이 돌아가고 난 뒤 대부호는 저택 밖으로 나가 잠시 뛰었다. 대부호의 저택은 어떤 숲 앞에 있었고 그곳은 국립 공원이었다. 대부호는 밤에 그곳을 뛰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운동을 빼놓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 불행은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로는 그리 큰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대부호는 그 말이 어쩐지 인쇄기에서 전사되는 어떤 견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이 어떤 식의 읽을거리로 전락한 것 같았다. 대부호는 의외로 소심한 성격이어서, 만일 카드 점을 치는 여인의 말을 믿지 않을 경우 자신에게 어떤 불행이 닥칠 것인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이미 일어나고 난 뒤였다. 대부호는 남들보다 자신이 더 그 불행을 좀 더 와닿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전 재산의 반이나 잃었지만 거기에서 대부호는 그리 큰 실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사실 몇 번의 고비를 거쳐 지금 같이 돈을 불린 이후로부터 대부호는 실감이랄 것이 약간 마비된 상태였다. 대부호는 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호는 뛰었다. 어젯밤 일어난 일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돌려놓기 위해. 그리고 그에 대해서 몰입하고 대처하기 위해. 대부호는 숨이 가빠 왔고 대부호는 뛰던 것을 그만두고 잠시 걸었다. 밤이 있었다. 그리고 나무 어둠 속에 가린 새들이 있었다. 저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대부호는 남의 것이 인용되고 저촉되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부호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대부호는 밤의 이 숲 안에서 어젯밤의 그 일을 잠시 더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이 실수로 자신이 아끼는 찻주전자를 떨어뜨려 깨게 된 일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분명히 그런 일이 최근에 있었다는 사실이 고용인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던 것을 접한 적이 있었다. 대부호는 그 사실에 눈을 감았었다. 대부호는 그 어젯밤의 일이 하나의 재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 자신이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어떤 불행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호는 그런 불행의 감각에 잠시 몰입해 있었다. 사실 대부호는 좌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쌓아둔 재산들이 그것을 방해했다. 대부호는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었는데 후원자들에게서 온 편지가 조금 판에 박혀 있는 것 같았으며 지금 대부호는 그러한 판에 박힘이 어쩐지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인용하는 일도 저촉하는 일도 아니었다. 판에 박힘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어려운 일에 대처하는 한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의 숲 저편에서 새들은 새들의 것이라 믿을 수 없는 소리로 울고 있었는데, 대부호는 그런 것을 듣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에 깊게 빠져들고 있었다. 후원자들의 편지. 대부호는 그러한 편지들에 후원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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