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4일 화요일

미니어처

거리에는 비가 있다. 비가 내린다. 나는 차창을 열고 손을 내밀어 내 손바닥으로 비가 오게 했다. 차는 멈춰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다시 움직였다. 차가 움직일 때에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나는 차를 몰고 권투 클럽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약 30분 정도가 걸린다. 권투 클럽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권투 클럽 밖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미니어처로 된 이곳 풍경 밖으로 도시의 경관을 내려다보는 사람들 중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권투 클럽까지 차로 30분이 걸리지만 만약 바깥에 있는 사람들 중 마음씨 착한 사람이 내 차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 권투 클럽 앞에 놓아준다면 거리는 영이 될 것이다. 거리는 영. 거리는 영. 나는 주문처럼 그 말을 중얼거렸다. 물론 이곳 도시에도 미니어처를 다루는 가게들이 있다. 이곳이 미니어처의 세상이니까 어쩌면 랜드마크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곳을 다니는 전철과 열차들은 모두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손끝에서 완성된 것이므로 뭐랄까 견고하며 더 품위가 있다. 불행하게도 정확한 재현을 위해 역사적인 모델 이름까지 그대로 새겨져 있으므로 제작자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나 또한 만들어진 모형이다. 내 얼굴을 만드는 데는 몇 사람의 손이 거쳐 갔을까? 만들어진 나는 최후에 조립되었으며 그 점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웃을 줄 아는 기계 로봇들, 안드로이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들이 서로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이곳 도시에서의 만남은 딱히 제한되어 있지 않다. 우리들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므로 산아 인구수 제한이 없는 것이다. 우리들의 후손은 전부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초기 모델과 후기 모델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후손이 아닌 동료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그렇다. 물론 우리들의 얼굴은 인간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 미니어처 도시 안에는 날씨까지 재현되어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도시에 있는 식물들은 전부 바깥세상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점이다. 이끼류를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그 크기가 아주 거대하다. 그것들은 바깥 인간들의 손으로 빚어낸 것들이 아니다. 바깥세상에서 돌보다가 관리되었고 씨가 추출되거나 묘가 파종되어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들이다. 바깥세상에서는 비 오는 데 이유가 없을지 모르나 이곳에서만큼은 그러한 식물들을 관리하기 위해 비를 뿌리는 것일지 모른다. 엄밀히 말해 이곳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왜나하면 우리들은 자신의 생김새 그대로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차를 몰고 권투 클럽으로 가고 있지만 차는 영원히 도착하지 않는다. 내가 ‘거리는 영’이라고 주문처럼 중얼거린 이유가 그 때문이다. 우리들은 영화 속의 스틸컷처럼 그 순간 그대로의 인물들에 조형이 갖춰진 것이지 아직도 걸음걸이가 어색하나 그래도 꽤 잘 걷는 현세대의 인간형 주행 로봇과는 다르다. 그들이 과학적이라면 우리는 예술적이며, 그들이 이과에 가깝다면 우리들은 문과에 가깝다. 우리들은 심장이 없는 앙철 나무꾼과 비슷한 신세이고 그들은 새가 비웃는 허수아비와 비슷한 신세이다. 물론 우리들은 허수아비 신세들인 그들보다는 처지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어떤 점에서 우리는 우리들을 만든 바깥의 사람들보다도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들은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노동은 동결되었다고나 할까. 노동을 구성하는 핵심에서 동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 중 일하는 모습의 미니어처가 있다면 단지 겉보기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사실은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있어도 우리는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로 우리들의 사진이나 그림, 비디오, 그리고 우리들의 실제 모습에는 원색적인 데가 있다. 우리들은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계란 그런 것이다. 물론 우리들의 시선에는 시간의 경과가 느껴진다. 때때로 비가 오며, 외계의 식물들은 생장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그러한 시간의 경과는 우리들 중 아주 감이 좋은 이들이나 머리가 똑똑한 자들이 간신히 개념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바깥세계의 근본 원리에 가깝다. 우리들은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아마도 우리들과 다른 평행 세계에서는 점토로 만들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분사 마커로 색칠을 하는 것은 우리들의 제조에 있어서 막바지 작업인데, 우리들은 그 순간을, 마치 아이가 태어나서 우는 것처럼 최초의 색조가 그렇게 새겨진 기억을 사랑하는 편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사랑의 개념이란 친숙하다. 우리들은 그것을 모두 알고 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계에서 사랑은 더 잘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안다. 우리들이 처지가 어떤 외계 사람의 열렬한 애호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는데, 사실 우리는 외계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물론 우리는 모두 그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마치 진공 속에서 울려 퍼지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아, 참고로 나는 차창 너머로 옆모습이 비치도록 앉아 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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