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6일 월요일

일망타진

한 번의 그물질로 싸그리 잡는다, 투망일까? ‘일망타진’은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하나다. 출판사 이름을 일망타진으로 하자는 데에는 내가 좋아한다는 것 외 아무 뜻이 없다. 하지만 출판사 이름이 일망타진이라면 그건 무슨 뜻일까? 일망은 뭘 뜻하는 거고, 싸그리 무엇을 잡는다는 뜻일까? 씨줄과 날줄은 무엇이며 그물코는 무엇일까? 그물이 책이라면... 낱장이 씨줄이고... 출판이 그물이라면... 고기는 우리다... 그물이 독자라면... 날줄은 국어... 고기가 책이라면... 그물은 노동이다. 고기가 책이라면... 고기가 책인 편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씨줄은 독자의 노동이고 날줄은 나의 노동이다. 잡는다는 건 뭘까? 읽는다는 걸까? 산다는 걸까? 잡지 못한다는 건 뭘까? 너의 노동과 나의 노동 끝에도 책을 잡지 못한다는 건? 타이밍이 문제였을까? 그물코가 너무 컸나? 책이 너무 작았나? 잡았다가 놓아줄 수도 있을까? 고기는 잡았더라도 놓아줘야만 하는 것이라 치자.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투망은 이상하다. 족대면 모를까. 일망타진이면 놓아줄 수 없다. 뭘 잡고 놓는 것은 수량과 관련된 문제일까? 하나를 잡으면 놓아줄 수 있지만 너무 여럿을, 모조리 잡으면 못 놓는다? 한 권을 읽었다면 놓아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권을 읽었다면? 이런 식의 접근은 일망타진 출판사의 방향성과 썩 맞진 않는다.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 바닷가로 소풍을 갔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풀어놓고 한 시간쯤 놀게 했고, 그사이 우리는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줍고 잡았다. 나는 플라스틱 생수통에다 소라게를 몇 마리 넣었다. 시간이 잘 갔다. 다시 버스에 모인 우리는 각자 잡은 것을 비교해 보았다. 나는 많이 잡은 편도 적게 잡은 편도 아니었다. 한 친구가 내게, 소라게들을 놓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째서? 나는 소라게들을 위해 특별히 입구가 넓은 통을 주웠다. 모래와 자갈도 좀 넣어주었다. 그때 그 친구가 내게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뭐라 열띠게 말했던 것 같다. 나는 설득당했고, 나처럼 설득당한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한테 가서 이것들을, 불쌍한 소라게 따위를 놓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이미 늦었다고 했다. 이미 늦었다. 이미 버스는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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