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6일 금요일

신의 형상

아직까지는 신을 만나볼 수 없었다. 편지, 안부 인사, 인터뷰 요청, 선물, 윽박지르기, 애원하기, 젠장 그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지금까지 취해온 행동의 가짓수만 열거해보아도 자명해지지 않는가 이 열렬한 관심, 최후의 수단이라 생각한 ‘한동안 무심을 가장하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연락하기’까지 포함해 나의 모든 제안과 요청이 거절당했고, 조금은 비참한 심정마저도 들려 하므로 유형별 시도의 횟수는 첨언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언제인가부터는 나도 헤아리지 않고 있다.

그가 그러는 이유도 <논리>적으로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A가 B를 만나는 것이 A에게 아무 이득도 되지 못하는데 어째서 A가 굳이 B를 만나야 하는가, 신과 박물학자(인 나라는 일인칭)의 입장을 익명의 존재들로 치환하면 이를 수 있는 가까운 결론이다. (여기에서 이득이란 누군가를 만나고 소통함으로 얻는 최소한의 심리적 만족감까지를 포함한다.)

하지만 그는 이잖아? 즉 그의 소유들을 사랑할 의무가 있잖아? 사랑한다는 것은 응답한다는 거잖아? / 하지만 나는 박물학자잖아? 즉 존재한다 여겨지는 모든 것을 탐구하기로 했잖아? 모든 것이란 모든 것이잖아?

독자들에게는 실례가 되겠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선행 연구들에 대한 재탐색 외에는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다. 그의 오랜 무응답을 그의 부재(애초부터의)로 해석하지 않기로 전제할 때…… 내가 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권에 따라 신의 장애를 상상한(혹은 증언한) 사례도 이미 있다. 독자들도 잘 아는 사례를 꼽자면 눈을 가린/때로 눈이 먼 정의의 여신이 대표적이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은 정말로 앞을 보지 못할까? 신인데? 애초에 그에게 가릴 눈과 저울 들 팔이 필요했을까? 그가 취한 자세는 인간들이 알기 쉽게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가깝지 않을까?

신은 인간의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눈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보고 있다. 신에게는 다리가 없다. 걷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어디에나 누구보다도 빨리 갈 수 있다. 그에게 음성 언어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입과 귀의 기능도 장담할 수 없다. 그와 소통한 이들이 <들었다>고 믿는 것이 실제로 그의 목울대를 거쳐 발성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의사를 전달하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목격담 또는 그림을 통해 우리가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그의 형상에 이목구비와 수족은 늘 빠짐없이 있다. 아름답게 있다. 필요도 없는데 있다. 나는 그것을 그의 취미로 여기고 싶다. 인간이 TPO에 맞게 때로 기능보다 장식에 치중한 옷을 고르듯…… 그도 드물게 인간을 만날 때는 육신을 입을 것이다. 그의 옷장에 한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브라함계 종교에서는 우리가 그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그의 형상은 현재 기준으로 최소 70억 가지가 존재한다. 흑인이고 백인이며 황인이기도 한 그는 때때로 여성, 가끔은 남성이며 어린아이이기도 하지만 노인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경우 신체적 결함이 있다. 유일신 신앙의 특징은 그 하나뿐인 신에게 모든 권능이 집중되는 것이고, 함정은 완벽한 신의 형상이 한 가지라 믿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왜 전변하지는 못하겠는가. 그의 모습이 겨우 70억 가지에 불과하겠는가. 한편 장자 우대의 관습을 지닌 유목 문화에서 발생한 아브라함계 종교에 기반하여, 완벽한 인간의 형상을 뚜렷한 장애가 없는 남성으로 설정하는 것에는 모순이 없는 듯하지만, 그 형상의 피부색이 흴수록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비웃음 없이는 마저 쓸 수 없으므로 생략하겠다.

역사상 가장 신에 가까웠다고 기록된 이가 자기 입으로―인간의 입으로― 말했다. “너희 중 가장 낮은 이가 바로 나다.” 후대의 화가들은 대체로 그를 미형의 백인 남성으로 묘사했다. 그려진 그에게는 장애가 없다. 보통의 인간과 다른 점이라곤 후광뿐이다. 그것을 장애의 일종이라 말해도 좋을까? 남들에게는 없는 것이기에. 앞서 나는 우리가 취한 신의 형상(아브라함계 종교적 전제 안에서) 대부분에 결함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결함은 장애로, 어떤 결함은 장애로 분류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장애라고 봐도 좋을까? 어둠 속에 몸을 숨길 수 없게 만드는, 즉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었을 그 머리 뒤 빛의 다발 혹은 고리를.

일전에 신을 모독하려 했다면 먼저 그에 대해 말할 것이라 예고한 바 있다. 이 글은 그를 모독하려는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지만 불쾌하다면 연락이 오겠지, 바라던 바라고 하겠다. 보고 계시다면 연락에 응답 좀 하십시오.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한테는.

결론이자 전제이고 (아브라함계 종교의) 그가 그랬듯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 하나, 신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방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전제는 그가 <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신이잖아?’ (‘울트라맨이 개미에게 질 리가 없잖아?’ 같은 어조로) 그러나 혹은 그러니 반박도 같은 방식으로 가능하다. 그래, 그는 신이잖아.

그래서? 왜 그를 우리 유한한 존재의 인식 안에 가두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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