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6일 목요일

돈버는방법

‘내 꿈은 돈벌이’라는 이야기가 종일 머릿속에 맴돌아, 핵전쟁을 겪은 듯 아주 쓴 입맛으로 잠들었던 간밤. 꿈에 다리 많은 벌레가 나왔는데 우리 사이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움직임이나 기색이나, 벌레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느낌이란 게 있었다. 우리는 서로 피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잘 지냈다. 벌레도 내 표정을 읽진 못했겠지만, 느꼈을까? 회사에 나와서 앉은 지금 벌레의 다리들보다 많은 돈 얘기를 읽고 들으며 내 꿈은 핵전쟁이 되어 가고 있다. 줄지은 벌레들이 눈알 위로 지나가고 있다, 귓속으로 입속으로 드나들고 있다. 나는 이제 꿈속의 벌레에게도 거의 우정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돈 버는 방법을 직간접적으로 알려주겠다며 쏟아져나오는 저 수많은 쓰레기 책들과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지 모르고, 나를 어떻게 갈아버릴까 호시탐탐인 사장에게도 거의 우정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빨간 교정 표시들이 뽈뽈대며 모였다 흩어진다, 사장실로부터 찍찍대는 소리 층층 겹겹... 이거다! 도저히 벌레가 되어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면, 그러니까 저자가 벌레 같은 저자여서는 안 되고, 물론 벌레 같은 책이어서도 안 되고,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피할 수도 없다면, 서로 느껴야만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면! 그 짐을 출판사가 짊어지는 수밖엔 없는 것이다. 무거운 그 짐... 그야말로 오물 더미 같은 그 짐! 우리의 사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책등에, 표지에, 아니면 어디에라도, ‘돈버는방법’이라고 쓰여있으면 한 번은, 그래도 한 번은 펼쳐보지 않겠나? 우리의 희생을 통해 있어도 될 만한 책을 드디어 만들 수 있게 될는지 모른다. 돈 버는 방법 따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 일과 근본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는 책, 그놈의 돈 버는 방법과는 절대적으로 무관한 책을 만들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나의 임금에 드디어 만족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나의 임금에 만족한다는 것이, 더 이상 어떤 종류의 도피를, 내가 원했던 적 없는 종류의 도피를, 뜻하지 않게 되는 건지도 모르고...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