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3일 화요일

금치산미디어

나는 멍하니 누워 있다. 왜 내가 나의 재산을 멋대로 다룰 수 있는 거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지 않던가? 도대체 어떻게, 나의 재산에 대한 나 자신의 엉망진창 재산 관리가 금지되어 있지 않은 걸까? 재산이란 게 정말 중요한 거라면, 거기 어떤 의미가 있다면 말이다. 재산이란 것에 물론 의미가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다들 재산 생각들을 한다. 왜 아니겠나? 다시 말해, 무의미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건 내 재산이란 것을 내가 멋대로 해버리지 않는 한에서만 그렇다. 그럼 멋대로 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그건 고민해볼 만한 일이다. 어쨌든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해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한계 있는 사람인데 나의 재산 다루기에 한계가 없다면 이상하다. 한계가 있어야 한다면 그 한계는 분명 내가 아닌 것, 나 이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냥 형식적인 몇 가지 제한이 아니라, 내가 아닌 뭔가가 나의 재산에 전격적으로 개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 세계가 가능하지 않으리란 말이다. 왜 가능하지 않냐면, 이미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절대로 결단코 금지될 수 없는 듯이, 내가 내 재산의 가능적 무제한성에 딸려붙는 일은 금지되어야 한다. 재차 왜냐하면, 나의 재산은 절대로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의 생각에 쥐꼬리만큼이라도 동의할 수 있는 이에게, ‘금치산미디어’는 활짝 열려 있다.

경제의 자유? 무슨 그런 말이 유행하는 모양이다. 별 씨 개 같은 소리들... 이런 건 어떨까? 아무리 봐도, 저 녀석이 멋대로 자기 재산을 처분하고 엉뚱한 데에 써버리도록 그냥 두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저 녀석에겐 그럴 만한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저 녀석의 탓이 아니다, 저 녀석이 어떤 녀석이든 저 녀석의 한계를 넘어서고 마는 그토록 거대한 권한이, 저 녀석에게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아니겠나? 만약 저 녀석의 초과된 권한을 부드럽게 덜어주기 위해 정당한 책임 나누기의 일환으로 내 재산의 처분과 관리 역시 나로부터 어느 정도 금지되어야 한다면, 그래도 좋다. 글쎄 그래도 된다지 않아! 이미 그렇다니까! 바꿔 말해 이럴 수도 있다. 정말이지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재산 처분과 관리에 대한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의 재산의 처분과 관리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한 일이다, 참을 수 있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런, ‘사람 취급’이라는 이 패습, 재산이라는 매개를 통해 삶의 형태가(‘자유’가) 결정되고 사람으로 감각되는 이 세계에서, 한편 어떤 이들에게는 아예 처분하고 관리할 재산 자체가 없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며 무슨 뜻일까? 이 생각은 사람 아닌 것들에 대한 생각과 그것들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는데, 그러니까, 사람이 없는 것처럼이 아니라 ‘있는 것처럼’ 다뤄지는 그 방식에 대한 생각, 금치산미디어는 바로 그 금지된 생각들과 함께 간다. 어디로 간다는 것일까? 어떻게 금지한다는 걸까? 개가 자신의 녹색 인형을 물고 온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