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6일 월요일

기이한 여행의 삵

인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삵도 여행을 한다. 사막이란 장소에서 한군데에 붙박여 있는 건 불길한 일이고, 그 점이 삵의 눈동자 뒤에 각인되어 있으며(이 나라가 사막은 아닐지라도) 어디로든 가볍게 떠나고 싶어 한다는 건 고양잇과의 종특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삵은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 삵은 겉보기론 길고양이들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야성을 잃어버렸고 단지 고양이들보다 좀 더 허리선이 길며 날렵하다는 것 외에는. 나는 그 사실이 못내 슬프고, 다행인 건 그래서 이 삵이 주택가에 거닐고 있어도 야생 동물 보호반을 부를 사람이 없다는 것일까. 그래서 이 삵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처음엔 가볍게 옆 동네의 주택가로 이동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분명한 건 아까 동네와의 주된 냄새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음식점들이 주택가에 분위기상 녹아들어 있는 그런 지엽적인 동네이고, 삵도 배고프니까 평범한 길고양이들처럼 음식물 봉투를 찢거나 한다. 그럼 곧 사람들이 달려올 거라는 건 다른 길고양이들처럼 삵도 평범하게 아는 사실이고, 그래서 서둘러 먹고 삵은 다시 길을 떠난다. 다시 옆 동네로. 그렇게 다시 옆 동네로. 그러다가 삵은 이번의 경우, 어느 집의 주위를 둘러싼 담장 위를 걷고 있다. 거닐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리기도 한다. 어떤 여자애가 그 삵의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선다. 그 순간 삵은 담장을 뛰어넘어 그 집 마당으로 간다. 삵은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니까. 왜냐하면 그 순간이 고정되어 영원히 그 순간에 사는 것처럼 취급되는, 그러니까 사물화라는 낱말이 주는 상황을 삵은 배격하기에. 혹은 그런 것이 아니고 그 마당에 단순히 귀여워 보이는 오리가 못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첨벙, 하고 그 삵은 못 안으로 뛰어든다. 제 몸을 씻기 위함인 동시에 그 오리를 가까이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삵은, 그러니까 고양잇과 동물들의 경우 거리라는 것에 무척 민감하고 까다로워서, 일종의 폭군인 것처럼 [거리 조절]이라는 국면에 있어서는 자기가 왕인 것처럼 군다. 아니 일종의 왕인 건 맞는데(왜냐하면 삵이니까). 삵은 그 오리를 보기만 한 다음에 다시 몸을 뛰어서 담장으로 간다. 삵은 그 오리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오리가 귀여워서일 수도 있겠고 단순히 배고프지 않아서, 혹은 오리의 주인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간 삵은 다시 길을 거닐기 시작하고, 지켜보는 나 같은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오리는 이미 깜짝 놀라버렸고 꽥꽥, 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뒤뚱뒤뚱한 걸음으로 못이 아니라 그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사실 이 삵은 어느 정도 야성을 잃어버린 뒤라, 먹을 것은 오직 음식물 봉투로 한정한다. 야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화를 거친 것일지도 모른다. 삵은 종종걸음으로 담장 같은 데로 뛰어 올라서서 자꾸만 옆 동네로 간다. 삵이 옆 동네에서 왔다는 것은, 그리고 다시 옆옆, 옆옆옆 동네에서 왔다는 것은 사람들, 그리고 다른 길 고양이들은 모른다. 왜냐하면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뭔가 평범한 고양이와는 다르단 걸, 다른 길고양이들은 알고 있다. 몸이 좀 더 길고 다른 고양이들보다 좀 더 날렵한 것이다. 그러므로 삵이란 이 낱말의 뒤에 자리하는 위엄 같은 모습을, 이 삵은 가끔 보여줄 때도 있다. 다른 고양이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거나 하는 것이다. 삵이 조금 더 빠르므로 그러나 많은 차이가 나진 않아서 술래로는 제격이기에, 이 삵은 술래만 한다. 다른 머리 큰 고양이들이 도망치고, 삵은 리드미컬하게 간격을 재거나 하면서 다른 고양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어찌 보면 삵이라고 내가 부른 게 다행일 만큼 이 삵은 고양이들 배 술래잡기 놀이에서 술래로서 적격인 모습을 보여준다. 삵은 먼 길(내가 여행이라고 말한)을 다시 떠나야 하므로 영원히 술래를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삵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잡을 수 있었음을 과시하려는 듯이 어느 새끼 고양이의 목덜미를 물고 다른 고양이들 앞에 내던진다. 그리고 혀로 할짝인다. 이럴 때의 삵은, 다른 어떤 고양이들도 방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놀이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내가 삵이라고 부르는 이 고양이가, 아니 삵이, 다른 평범한 고양이들과는 얼마나 다른지 충분히 설명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간 이 삵은 그래서 원래 있던 곳과는 아주 먼 동네까지 갔는데, 그곳 역시 주택가이고, 한 가지 다른 점은 여긴 서울같이 힙한 동네가 아니기에, 주택가들 사이에 음식점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짠 바다 냄새가 난다. 삵은 이 생소한 냄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어쩐지 생선이 많을 것만 같은 냄새에 이끌려서, 그쪽으로 향한다. 땅에 인접한 해안의 모습, 그러니까 모래알들이 보이고 어떤 곳의 모래 속에는 내가 삵을 위해 묻어둔 생선이 있다. 그걸 모르고 삵은 자꾸만 바다 쪽으로 향한다. 그래서 헤엄치려는 듯이, 헤엄치려는 듯이 물이 다리의 중간쯤까지 올라와 젖는데도 자꾸만 그쪽으로 향한다. 어, 어 하면서 삵을 구해내려고 해수욕하던 사람들이 달려들고, 삵은 사람들을 피해 다시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해양의 모습을 멀리까지 바라본다. 안타깝지만 삵의 여행은 여기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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