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4일 화요일

먼지로

지랄하는 저자가,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슬리퍼를 칙칙 끌고 다니는 팀장이, 그 모든 것들, 오직 나를 좆되게 하려는, 책이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일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 당연히 나까지도, 혐오스럽다. 미안하다. 그러나 싫다. 그리고 다음의 모든 것들, 통화와 문자, 메일... 그래, 전기! 전기와 나무! 롤러! 높은 천장 빠레트 마신 커피들 처먹은 밥들 화장실 사무실 화물차 속의 어둠... 어둠이 무슨 잘못이겠니? 그러나 그것들과, 만지는 손끝과 읽는 눈알도, 색깔과 낱장, 계단, 상자, 그런 것들 다 싫다. 계산서의 숫자들... 복잡한 얘기... 난 복잡한 얘기는 싫다. 단순한 것도 싫다. 말과 글자들 주소들 그것들의 있음과 없음 모두 싫다. 그리고 드디어 앞뒤 표지와 책등도 싫고, 열두 개의 모서리가 싫다. 펼쳐진다는 것도 덮인다는 것도 그렇다. 싫다. 겪은 적 없는 기억, 들은 적 없어도 아는 목소리 다 싫다. 이제껏 나온 책들이 많다. 많다 하고 말기엔 너무나 많고, 그 책들은 존재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읽히지 않는 채 꽂혀 있거나 쌓여 있다. 그것들이 버섯 또는 곰팡이처럼 뿜어내고 있는 엄청난 양의 먼지들, 혐오스럽지 않은 것이라면 오직 그 먼지들뿐이다. 그것은 책이 이제 부서지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자신을 들이마시게 하려고 책 스스로 부서진다? 그건 복수다. 아니면 손짓이다. 드디어, 그들이 인체를 펼치고 넘기려는 것이다. 우리를 읽으려는 것이다. 우리 속으로 들어가서. 책의 공간은 점점 넓어지고 내 공간은 점점 좁아진다. 냄새, 쌓인 책의 좋은 냄새, 나를 읽으려는, 먼지로... 먼지로! 바로 그 책이 ‘먼지로’ 출판사가 만들려는 책이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