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0일 수요일

ㅅㅈㅁㄹ

어쩌면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을? 사장님 모르게? ‘ㅅㅈㅁㄹ’ 출판사는 출판사 첫출발의 실마리를 그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장님 모르게 책을 만들면 어떨까? 사장님 모르게 책을 만들어버린다는 거다. 권한상 접근할 수 있는 회사의 모든 것을 이용하면서. 왜 그래야 하지? ㅅㅈㅁㄹ 출판사에 따르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만약 출판사에 다녀봤다면 누구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업무 시간에 몰래 만들었다는 뜻인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아니라 자기가 등록한 출판사의 책을? 그런 것도 아닌 것도 있다. 그건 아주 초창기의, 혼자서 시작했을 때의 방식이었다. 아직도 그렇게 만드는 책이 있긴 있다. 지금은, 자세히 밝힐 순 없고, ‘그보다 더한’ 방식이 많다. 기절초풍할... 사장님이 알면 나(우리)의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 ...그 사장님이 한 명의 사장님도 아니고. 그게 말이 돼? 말이 되건 안 되건, ㅅㅈㅁㄹ 출판사에 따르면 되는 일이다. 그 일은 가능하다. 어처구니없이 가능하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 ㅅㅈㅁㄹ 출판사에 따르면 그 일은 이미 일어났다. 우리도 믿기 어렵다. 하루하루가 경이롭다. 사장님(들)께는 애석한 일이다. 좀 더 자세히 알려줄 순 없나? 다시 말하지만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몰래 하는 거니까. 혹시 범죄 아닌가? (거의) 범죄가 맞는다. ㅅㅈㅁㄹ 출판사는 악법도 법이라는 데 동의하고, 범죄는 죄라는 데 동의하고 인간도 간이고 사람도 람이고... 그런 냉소적인 말도 쓰여있다. ㅅㅈㅁㄹ 출판사의 QnA에 쓰여있다는 말이다. 출판사를 소개하는 웹 페이지와 꾸준히 운영되고 있는 QnA 외엔, ㅅㅈㅁㄹ 출판사의 존재를 입증할 다른 아무것도 없다. 무슨 책이 나왔는지 그것도 비밀이다. 몰래 만들었기 때문에. 이래서는 사장님 몰래인지 독자들 몰래인지 알 게 뭔가? QnA에 따르면, ㅅㅈㅁㄹ 출판사의 책 중 제법 팔린/읽힌 것도 있다고 한다. 8쇄를 찍었다고? 거짓말... 그 정도 되는 대로 거짓말은 나도 할 수 있다! 힌트만이라도 좀 달라는 질문에 ‘몰래 알려드리는 겁니다만’ 하면서 달아놓은 답을 읽어보자. 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책 중 가장 실험적인 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시 원고를 하나 얻었죠. 그 원고 그대로, 우리 ‘요원’이 만들고 있는 책에서 순서대로 한 글자 한 글자 찾아내 굵기를 아주 조금씩 몰래 키워놓은 겁니다. 미리 인지하고 보면 보이지만 아니면 모를 정도로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글자들이 순서대로 나오는 책을 찾는 부분이 참 쉽지 않았죠. 그렇게 시인 약력이랑 판권까지 만들었는데... 정말 공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것도 책이라고 할 수 있나? 어차피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가장 실험적인 케이스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어쨌든 아무도는 아니죠! 저자와 편집 요원과 디자이너 요원이 확실히 읽었습니다. 표지 그대로의 책을 다 읽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숨겨진 책도 읽은 거고요. 못해도 백 명은 될 겁니다. 만들어지고서 서너 번의 읽힘이 있을까 말까 한 책들, 저자 자신도 안 읽어볼 죽은 버러지 같은 책들이 많아요. 다 추억입니다. 이 답변을 읽고 나는 ㅅㅈㅁㄹ 출판사의 모욕적인 답변 태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싶어졌지만 아무 방법이 없었다. 이미 항의는 많았다. 하지만 항의가 아니라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일까요? 사장님들이 언제까지 이 출판사의 존재를 모를 거라 생각하나요? 모르다뇨, 사장님들을 전부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알다마다요. 애초에 이 페이지도 그분들께 알려주려고 만든 겁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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