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7일 토요일

부엉이 학교

밤이 되자 부엉이들이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 부엉이는 낮 동안에 날아다니고 밤에는 나뭇가지 위에서 잠든다. 잠든 부엉이는 한쪽 눈을 뜨고 있기도 한데, 조명이 부족해서 여기까지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는 기숙사 안이고 늦은 시간까지 마이는 미술 주간 과제를 하고 있다. 주간이라는 것은 이 학교에서 정해 놓은 학사 일정이다. 종종 인문학 구간이 될 때도 있다. 적당히 부유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마이는 기숙사 신청을 했을 때 합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경쟁률도 셌을뿐더러 집이 그리 먼 지역에 있는 것은 아니라 가산점도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기숙사에 붙었을 때 마이는 기분이 좋았다. 기숙사 건물이 좋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었고. 실제로 와 보니 그건 사실이었다. 마이는 신입생이고 선배와 2인 1실을 썼다. 선배의 이름은 나오였고 마이에게 나긋나긋이 대했다. 마이는 조금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고 그건 선배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선배는 은을 다루는 세공 기술 클래스였고 마이는 반짇고리에 든 물건들을 모두 다루는 클래스였다. 클래스라고는 하지만 그건 꽤 가변적으로, 자주 변했다. 이 학교의 모토는 학생들을 경쟁시키지 않는 거였다. 따라서 이상한 제목의 클래스도 갑자기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곤 했다. 클래스는 말하자면 시편들의 제목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고려하는 행정실 인력이나 외부 인원도 있었다. 클래스의 인원은 대체로 한 명에서 세 명 정도까지였고 인기 많은 클래스는 일곱 명까지 됐다. 학생의 수보다 개설된 클래스의 숫자가 더 많았기에 수강생 0명의 클래스도 있었는데 그런 클래스들도 폐강되지 않고 대기 클래스 목록에 들어가 수강 신청을 한다면 수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수강생이 한 명이라도 생기는 것이 좋았는데, 왜냐하면 클래스실 하나를 받고 연구비가 지원조로 나왔기 때문이다(수강생이 딱 한 명 있더라도 연구비는 똑같이 나왔다). 외부의 학교와는 조금 다른 이런 제도는 이 학교를 독특하고 매력 있게끔 보이도록 했다. 여기에 입학할 수 있는 조건은 하나였는데, 그건 학생들이 각각 수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시험 같은 것을 볼 때도 있었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포트폴리오를 검토하도록 하거나, 시험 강의를 하게끔 했다. 학교에서 모토로 정한 것은 경쟁을 시키지 않는 것이었으나 입학생들은 경쟁을 거친 한 분야의 숙련자들이라는 점에서 이 학교의 제도는 모순된 데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경쟁을 거치지 않고 입학한 이들이 경쟁적인 시스템 안에서 좋은 성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 등을 언급하며 이 학교를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꼭 성과라는 것으로 인해서 그것에 대해 비난할 구실을 만든다는 것은 좀 어떤가 싶기도 하다. 마이의 생각에 그런 연구 결과도 일리가 있는 게, 경쟁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소모된 사람들이 아니었고, 따라서 치열한 교과 과정에 자신을 갈아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마이는 좀 쉬고 싶었다. 마이가 생각하는 이 학교의 분위기는 평안과 장난스러움 같은 것에 가까웠다. 마이는 이 학교가 마음에 들었고, 이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4년 동안 8개 정도의 클래스를 만들어내야만 했는데, 그건 입학시험 때 치른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파생된 클래스여도 좋았고 다른 분야도 허용이 됐다. 다만 클래스 개설 심사의 경우 꽤 엄격했기 때문에(이것이 이 학교의 본격적인 교과 과정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자신의 전문 분야 안에서 개설하는 게 큰 힘 들이지 않고 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방법이었다. 초대 이사장은 이 학교 부지 안에 부엉이들을 데려와서 따로 조련사들을 두고 교정 내에서 밤이면 부엉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부엉이는 이 학교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입학식 때마다 학생들, 그러니까 신입생들은 부엉이 하나씩을 배정받고 왼쪽이나 오른쪽 어깨에 부엉이를 올려놓고 있어야만 했다. 처음 보는 부엉이인 데다 그것과 접촉하고 있어야 하니 아무리 잘 길이 든 부엉이들이라도 분위기는 부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엉이 조련사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은 자주 보이는 광경이었다. 후-웅 하는 부엉이들의 울음소리가 학장의 연설이 끝나면 나오는 것으로, 입학식은 항상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에게 배정되는 부엉이들의 나이는 2~3살 정도였고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부엉이를 물려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당 부엉이를 하나씩 배정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에 입학하면 길이 든 부엉이를 이용해 학교 근처에서는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마이는 입학식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책상 위에 엎어져 누웠다. 부엉이의 날갯짓에 뺨을 맞아서 선배들이 웃음을 지었던 그 일. 마이가 시험을 본 분야는 글쓰기와 반짇고리 다루는 법이었고 두 개 다 합격해서 좋은 성적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기숙사에 합격한 데에는 그런 점이 작용한 것 같기도 했다. 각각 한 분야의 수업을 맡은 학생들은 수업을 그들 내에서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시니어 클래스라고 해서 학교와 계약한 졸업생들이 주관하는 수업도 있었다(다만 재학생들의 것과 비교해서 인기는 비슷한 정도였다). 초대 이사장이 부엉이를 좋아했던 건 현자들이 부엉이를 좋아한다는 다소 흔한 속설 같은 것 때문이었는데, 그것도 꼭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현자인 마이도 부엉이를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학생들에게 배정되는 부엉이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약속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딱히 불러내지 않는다면) 그들은 숲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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