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4일 목요일

대화의 스무 가지 요령

1. 재미있는 상대를 구할 것. 장편 소설을 한 권 이상 쓴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2. 가능한 한 길게 할 것. 대화를 길게 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물들이 필요하다. 먼저 가치가 있는 자료들과, 대화하는 사람들의 능동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다만 실제로 대화에 입장할 때는 사람에 따라서 능동적인 자와 수동적인 자가 갈릴 수 있다. 이러한 의사-역할에 대한 능동적인 고려를 통해 실제 대화가 이상적인 시간-보내기로 변모할 수 있다.

3.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언급은 신중히 할 것. 이것도 사람의 개성에 따라 다름이 드러나는 분야다. 먼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라면 사족을 못 써 주구장창 하는 타입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대화 상대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대화에는 어떤 사전적인 권위-설정과 그것의 빈번한 무너짐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일이 약방의 감초를 찾는 것처럼 쉬운 일이라면 이것으로 대화하는 사람들 간의 학식이 부족한 모습은 감춰진다.

4. 꼭 학식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것은 다른 외부적인 조건들ㅡ돈과 명성, 자기 분야에서의 전문성, 또는 서로가 상대에게 보내는 호감을 비롯한 감정들까지도 아우른다. 학식은 중요하지만, 대화 자리는 그보다 더 폐쇄적이다. 학식은 넓은 분야에서의 성공을 도와주는 큰 요소이지만 대화에서는 그때그때 서로 올바른 카드를 내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5. 이것은 좀 애매하지만 가급적이면 대화는 두 사람이 할 것. 왜냐하면 사람 수가 많아지면 예산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에서는 서로 허영을 부르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니 조심할 것. 물론 이것도 사람의 성정에 따라서 그런 무대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값싼 재질의 옷을 일부러 입기도 하는 것처럼 사전에 좋은 대화를 제지하는 상황 설정은 가급적이면 피할 것.

6. 항상 어떤 만남이 있을 것.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고르는 등의 씀씀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씀씀이가 있다고 해서 꼭 대화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씀씀이의 발현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대화의 무대를 특별하게 삼되 모든 면에서의 새로움은 구하지 말라. 때로는 오래된 것, 안락한 것에 대한 선택이 좋은 대화를 만들기도 한다.

7. 집중할 것. 물론 매 순간마다 집중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대화 상대를 찾는 일은 어려울 것이며 물론 그것이 보람 있는 일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면서 혹시 내가 놓친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대화하는 상대가 항상 똑같이 말한다고 느껴진다면 내 행동이나 태도에서 미진함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라. 너무 당연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의 못남이 나의 부정적인 태도에서 발견된다면 그것을 능동적인 것으로 순화할 방향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대화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으므로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꾸려 가거나 고통을 받는 일 등은 피해 가야 한다.

8. 손안에 중요한 카드를 들고 있는 것처럼 지금 당장 당신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표출할 수 있음을 표현해라. 하지만 대화를 살벌한 무대나 전장으로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나쁜 방법이다. 물론 떨리는 대화라는 것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대화의 상호 작용은 서로 간에 있는 배려에서 나오는 것임을 납득하고 있어야 한다.

9. 대화는 편한 분위기에서 할 것. 만약 사람들 간의 대화가 불편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다면 그 속에서 비꼬는 말이 나왔는지를 한번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대화 속에 등장하는 비꼬는 말의 위력은 떨어지는 유성 같아서 유성이 떨어질 때는 모두가 고개를 저 하늘로 향하게 되고, 유성이 떨어진 자리에는 큰 흔적이 움푹 패일 수 있다. 비꼬는 말은 상호적인 대화에 있어서 피해갈 수 없는 위력을 지닌 것임과 동시에 서로 간의 신뢰 관계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능동적인 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비꼬는 말이 나왔을 때 그것을 인식하고 아까 전에 비꼬는 말이 나왔지, 하고 생각해 둘 것. 왜냐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비꼬는 말은 그 위력을 갑자기 잃고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비꼬는 말을 내뱉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자연히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게 될 때는 그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라. 왜냐하면 그 말은 눈앞의 상대보다는 활기가 없는, 단순히 죽은 것의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0.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고 자신이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을 피력하라. 때로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는 한 사람의 입장은 효과적인 유머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또한 사람의 시선은 신호등과 같아서 빨간 불일 때는 잠잠하다가도 초록 불이 될 때는 돌연 빛나며 압도적인 대수의 차량들이 운행하는 것처럼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이 물꼬가 트이기도 한다. 그러한 물꼬를 틔울 때는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전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이를 유념할 것.

11. 상대방의 꼬투리를 잡으면 그 서막을 장황하게 하라. 왜냐하면 한 사람의 불리한 입장이 희화화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정당한 구실 하나는 긴 여정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단점은 지적만 훌륭하다면 훌륭한 교사로부터 배움을 얻는 것처럼 재미있는 분위기와 함께 그것을 교정해 나가는 장이 될 수도 있다. 꼬투리를 잡을 때 서막을 장황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웃기고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장한 각오로 어떤 일에는 임하라.

12. 상대방의 눈에 호소하라. 이것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만약 감식안이 뛰어난 이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칭찬을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감식안에 대한 칭찬을 받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또한 상대방의 눈에 호소하라는 것은 때로 자신을 겸허하거나 예절 바른 이로 만들 수 있는 좋은 신조다. 과정에 대해 평가받고 그 결과를 손 위에 올려 마치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리듬을 따를 것.

13.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처럼 참을성을 가져라. 한 권 이상의 장편소설을 쓴 사람이 이상적인 대화 상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화에서 인내심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얘기하는 주제의 폭이란 서로 다 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영민한 눈으로 상대방의 한결같음에 대해서 폭로한다면 예쁘고 풀기 좋게 마련된 매듭을 푸는 일처럼 서로에게 재미있는 것이 될 수 있다. 놀이 중에서 특정한 한 종류는 바로 택배 박스에 들어 있는 운송용 포장을 하나씩 눌러 터뜨리는 일이다.

14. 외부적인 장치에 의해 도움을 받을 것. 수려한 외모의 사람들이 대화 상대로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건 그러한 사람들의 태도에서 어딘가 배움을 얻는 계기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외모가 대화에서 중요한 면을 담당하는 요소이긴 하다. 하지만 외모는 마음의 창이라는 독선적인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외모가 부족한 사람은 그에 대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대화의 한 분야는 상대의 그러한 자격지심을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시킬 것인지를 고려하는 것임을 알고 서로가 갖고 있는 단점으로 인해 분위기를 한쪽에 일방적인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엉엉 우는 일도 여기에 동원될 수가 있다. 먼 길을 돌아가면 빨리 닿기도 하는 것처럼, 가능하다면 외부적인 장치들을 동원해서라도 한쪽의 입장을 일방적인 것으로 만들지 말라. 여기에는 단맛이 나는 과자들이 좋은 도움이 될 수가 있다.

15. 상대방이 갖고 있는 명성에 대해 눈을 감을 것. 왜냐하면 눈을 감을 때 사람의 얼굴은 여러 개의 표징을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있을 때의 상태는 일반적이고, 일반적이라는 것은 명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한 요소로 파악될 수도 있다. 물론 일반적인 예시는 아니지만, 만약 명성을 갖고 있는 사람(장편 소설을 한 권 이상 쓴 사람 등)들에게는 그 명성에 대해 눈 감아 버리는 태도가 단순하고 효과적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놀라움을 느꼈다면 그 놀라움에 대해 잘 표현해야 한다. 왜냐하면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소경이 자신이 목적한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드라마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 대화에 있어서 연기자의 자질은 있어도 그만인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의 무덤덤한 성정을 표출하는 것에서 좋은 대화 상대의 요령이 발생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서로 어떤 것을 미묘하게 갈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 좋게도 그 상대가 눈앞에 있다면 바깥의 것은 무용하고 지금 상대만이 좋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기류에 흐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성정에 지루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으니 무덤덤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은 일상에 있어서 정치적인 변신을 자주 꾀하라. 폐쇄된 세계들을 도서관 등지에서 열람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될 수 있다.

17. 항상 마음을 젊게 하라. 늙은 사람들이 규탄을 받는 것은 항상 그들이 어린애와 같은 행동 원리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젊은 것은 어느 정도 성숙한 상태임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러한 순간이나 분기점을 지나고 있을 때에는 항상 대화하는 상대방을 눈앞에 있게 하라. 왜냐하면 대화를 하는 일과 일기를 쓰는 일은 서로 다르고, 시점이 추가되어 조명받는 것은 한 개인의 입체적인 면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때는 거추장스러운 잔가지들을 하나씩 걷어내는 마음으로 임하라. 사람은 나이가 들면 좀 더 성숙해지고, 사람들 속에서 대담한 입장 표명을 할 수 있는 기회에 마주 서게 된다.

18. 상대방이 본 책들에 관해서 일일이 묻지 말라. 책의 세계는 복잡다난한 이 세계의 일들과 같아서, 목적하는 바와 다르게 세상사가 요동칠 수도 있다. 그 세계 속에서 목적하는 곳에 다다르는 방법은 물론 훌륭한 조언에 따라서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스스로 선택하는 법이 필요하다. 자신이 했던 선택들을 곱씹으면서, 상대방이 하는 말이 어렵더라도 그것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라. 훌륭한 이해자만이 좋은 대화 상대가 된다는 건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거기에 더해 적당한 몰염치함과 자신의 마음을 감출 줄 모르는 성실함이 있다면 누구나 좋은 대화 상대가 된다.

19. 대립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오히려 좋은 것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 좋음을 구가한다는 건 대화에 있어서 숙명적인 일과도 같다. 좋음을 구가하지 못할 것이라면 어째서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자신의 내면 속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을 통틀어 오직 필요에 의한 만남은 그 수가 적고 희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필요하지 않은 만남이나 관계들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추억으로 남거나 하는 일도 빈번하다. 하지만 필요하지도 않은 만남과 관계들을 찾아 나서는 건 그 여정길이 험난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필요한 만남이나 관계들을 숙고해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반박하기도 하며 자신의 필요성을 따르고 있음을 상대에게 입증하라.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에게서 대립된 존재들의 도움을 바라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20. 대화를 길게 해야만 하는 이유에 관하여. 긴 것은 왠지 좋은 것 같다. 내가 장편 소설을 한 권 이상 쓴 사람들이 최고의 대화 상대라고 꼽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긴 것은 왜 좋은 것인가? 장편 소설을 쓴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거나, 알고 있지 못하더라도 체득은 하고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수많은 익명적인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이다. 나는 참을성이 많은 사람들이 좋다. 하지만 참을성이 많다고 해서 장편 소설을 한 권 쓴다는 건 왠지 성립되지 않는 일일 듯싶다. 이 모든 것에 기이하고 엉성하며 이상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으며, 나는 그 아래에 잠겨 있다. 무엇이 길게 이어진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또한 대화를 길게 할 수 있는 상대란 그 모든 신경을 거기에 집중하고 있지 않더라도 말하고 있는, 그래서 대화 도중에 쉴 수도 있는 상대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쓰는 동안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으며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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