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8일 목요일

편지

발몽 자작이 내게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했다. 메데이아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 순간 나는 당황하게 되어 여러 감정이 들었다. 우선은, 항상 메데이아 부인이 보내는 편지를 받던 입장인 발몽 자작이 무슨 연유로 갑자기 메데이아 부인에게 편지를 쓸 마음이 들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발몽 자작은 무표정한 채로 자신이 죽는다면 메데이아 부인에게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했다.

메데이아 부인은 편지를 완벽하게 봉하지 않곤 했다. 그래서 전달하는 동안에 편지를 열어볼 수 있었다. 나는 메데이아 부인의 편지를 발몽 자작에게 전해주는 일을 맡고 있었다. 편지를 열어본 적은 지금껏 한 번 있었다. 내가 그것을 보고 확인한 감상은 바깥의 평가에 비해 그녀의 말투가 순진했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에 하나씩의 일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메데이아 부인의 저택의 집사였다. 그런 내게 발몽 자작은 부탁을 한 것이다. 지금껏 받기만 했던 편지의 최초의 답장을. 그 부탁을 받고 나는 온종일 고민했다. 메데이아 부인은 사교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 성격의 어떤 부분이 편지를 전달하는 일에 적합했기에 나를 적임자로 삼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가 한번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혹시 다음번부터 발몽 자작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신 써줄 수는 없겠냐고. 나는 메데이아 부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나와는 다른 쪽의 성별로 사교계의 유명인인 그녀의 말투를 모방해 한 남자에게 변치 않을 관계를 약속하는, 그런 편지를 쓰기에 나는 부담스러우며, 나는 멍청하고,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진다고. 이미 발몽 자작에게 부탁을 받은 입장인 나로서는 상황에 맞는 말이 그런 것뿐이 없었다.

메데이아 부인이 떠났다. 나는 그녀를 대신해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발몽 자작에게 전해주러 가고, 발몽 자작의 부탁으로 내가 그를 대신해 쓴 편지를 다시 메데이아 부인의 저택으로 송달해 가고, 하는 식으로 둘 사이에 오가는 편지를 쓰고 보내는 모든 일을 맡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부탁을 받기 전에 혼자서 고민했던 내용을 다시 상기해 보았다.

사실 며칠 전에 메데이아 부인은 떠났으며, 이것은 그녀가 내게 부탁한 일이라고 발몽 자작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발몽 자작이 아니며 메데이아 부인의 편지를 날랐던 집사라고 메데이아 부인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메데이아 부인의 옆에 서 있을 때 났던 향기가 향기로웠다는 것도 발몽 자작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한 번에 하나씩의 일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며, 메데이아 부인의 편지를 중간에 한 번 열어본 일이 있다고 두 사람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발몽 자작의 질투를 불러일으켜 나는 메데이아 부인이 이 저택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메데이아 부인이 사귀었던 발몽 자작조차도 이미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편지 보내는 일을 미뤘다.

발몽 자작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메데이아 부인이 자신을 떠난 것을 알고 실의에 잠겨 죽음을 택하게 되었는지. 혹은 내가 편지를 전달하던 시절부터 발몽 자작은 저택에 있는 미라였고 나는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달하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두 사람이 살아 있게 만들고 싶다. 다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바깥의 평가에 비해 순진했다는 것이며, 나는 그녀의 편지를 중간에 한 번 열어본 일이 있었고, 나는 그의 부탁을 받은 입장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마지막이었는지도 모를 그런 부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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