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왜냐하면 나도 이유가 있기에


준짱: 어느 날은 해남으로 출장을 갔어. 거기가 바닷가 마을이거든요? 식당에 갔는데 모든 게 해산물인 거예요. 게다가 이제 그 식당 주인분이, 나 의원님 지지자잖아~ 이러시면서 내 옆자리에 딱 앉으셨어. 그리고 어머, 언니는 너무 말랐다, 하면서 내 숟가락 위에 게장이랑 생선을 다 얹어주시는 거야. 이거 다 비울 때까지 나 안 일어날 거라면서ㅋㅋㅋㅋㅋㅋ

유리: 그게 또 사랑해서 주는 거잖아요ㅋㅋㅋㅋ

담: 그러니까요. 안 먹으면 상처를 받으실 수 있어요.

준짱: 그리고 이, 지지자분에게 비건을 설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워.

담: 그쵸.

유리: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조건 속에서 일궈온 생업을 뭔가 납작한 방식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오해될 위험에 처해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특히 길고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 문장부터가 벌써 길고 구구절절해짐)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준짱 : 그래서 처음에는 제가 채식을 해서요,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해산물도 안 먹어? 이거 먹어 봐. 하면서 문어나 낙지가 섞여 있는 해초 무침, 그런 음식을 권하시고.

담: 친구들이랑 주로 소주 마실 때 가는 식당이 있는데요. 저랑 한 친구랑 비건이 된 후에, 오랜만에 거기 가서 두부김치를 시켰어요. 원래는 김치를 돼지고기랑 같이 볶아주시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모한테 고기 빼고 볶아달라고 그랬죠. 그랬더니 이모가ㅋㅋㅋㅋㅋㅋㅋ접시를 가져오시면서 “소시지로 넣었어~많이 넣었어~”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 맞아요. 우리 이모님들이 햄이 고기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하시죠.

담 : 너무 자랑스러워하셨어.

유리 : 잘해주려고 한 거니까. 인간 사회에서는 서로에게 고기를 먹이고 밥을 먹이는 게 애정의 표현인 거, 감사한 일이라는 걸 우리도 다 아니까요.

준짱 : 그걸 안 먹고 그 마음을 거절하는 게… 만약 거기 있던 게 나 혼자면, 혼자 그 식당에 간 거면 그냥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제가 정말 못 먹어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날은 내가 보좌진으로 있는 자리였잖아요. 그래서 먹었어요.

담: 비건 실천이 제일 어려울 때가 지역 출장 갈 때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준짱: 집에서는 그렇게 안 힘들어요. 낫또 먹으면 돼서. 근데 출장 가면 주로 도시락이 나오거든요. 당연히 비건 아니고. 그럼 도시락에 담긴 닭알말이를 두고 고민을 하는 거죠. 차 안에서 이동 중에 식사할 때가 잦은데 맨밥만 먹어서는 힘이 안 날 거 같을 때가 있어요. 바쁨에 쫓기고, 효율에 치여서 나의 가치를 배반할 때가 슬퍼요.

유리: 공감. 출장 가면 내가 비건지향인 줄 모르는 스태프분이 제육볶음 도시락 이런 걸 주세요. 고기가 이미 있잖아. 거기서 내가 김이랑 밥만 먹으면 고기가 버려지잖아요.

준짱: 맞아.

담: 그거 잘 생각해봐야 돼.

예인: 저는 언니랑 같이 사는데, 언니가 논비건이거든요. 언니가 식사하고 남은 음식을 보면 ‘저걸 저대로 버려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잔반 처리하듯이 먹게 되는 거예요.

준짱: 그쵸. 다 나름의 딜레마가 있어요.
얼마 전에는 출장을 갔어요. 일정표를 봤는데 점심 먹을 시간이 따로 없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달리는 차 안에서 준비해 둔 도시락을 먹기로 예정되어 있었어요. 내가 주문을 했으면 고기를 빼주시라 이런 설명을 했을 텐데. 그 도시락은 다른 활동가분이 직접 시켜주신 도시락인 거야. 또 달리는 자동차에서 도시락 먹을 때는 남기면 안 되거든요. 국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요. 그냥 다 먹는 거죠.
그럴 때 드는 어떤.... 어렵죠. 왜냐하면 나도…….

유리: 왜냐하면 나도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거잖아요.

담: 어느 날 기분이 괜히 그래져서 비건한 건 아니죠 ㅋㅋㅋㅋㅋㅋ

유리: <이유>를 모르는 분들이 이 이야기를 읽으면 뭐가 문제지?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채식이기 때문에. 각주 꼭 읽어주세요.


“한 달에 한 번
한 분의 손님을 엄살원에 모십니다.
비건 실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을 초대해
비건 만찬을 차려드려요.
대신 손님께선 제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 월간 비건 레시피&인터뷰 웹진 『엄살원』 3화,
준짱의 참지 않는 국회생활 下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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