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9일 수요일

부랑자 이야기

그의 내력을 설명하자니 길고, 용모에 관해서 눈여겨보자니 간단한 것이었다. 그는 부랑자였다. 땅 아래의 땅이라는 곳에서 올라온. 전신에는 티끌들이 묻은 붕대를 감고 있었으며 이마 아래의 눈은 형형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는 함께하는 사람이 없이 시내를 걸었다. 혹시 아득히 멀리 닿은 운명의 실이 이 시내를 걷는 사람들 중의 하나와 그를 묶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아무와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으며 단순히 걷기만 했다. 지상의 사람들과 아직 접점이 생기지 않은 채로 그는 설족 노인과 마주하게 되었다. 옆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눈빛이 형형한 쥐들이 경계하는 기색을 내보였다. 여기서 인간의 육신을 갖고 있는 것은 사방에 가득한 쥐들의 무리 중에서 그와 노인뿐이었다.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그대는 가진 게 없군.” “이 붕대뿐이오.”라고 그가 말했다. 그의 붕대 사이사이에는 어디서 묻었는지 모를 흰 가루들이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난 뒤 그 자리에 남는 눈물 자국에서 발견되는 흰 가루들인 것 같았다. “일부러 찾아온다면 이곳에 닿을 수 없소.”라고 노인이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정처 없이 걷고 있던 중이었소. 머무를 곳이 마땅치 않은지라.” 그와 노인 사이에 몇 마리의 쥐들이 난입해서 끽끽 하는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노인의 손을 타고 어깨 위에 올라와서 귀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노인이 말했다. “이곳에 머물길 원하시오?” 그가 대답했다. “그렇소. 만약 이곳에 삼주간만 머물게 해준다면 내 붕대를 조금 나눠주겠소.” “그대는 그대가 닿은 땅의 이름을 물어보고자 하지 않는가?” “관심 밖의 일이오.” “이곳은 설주라 하네.” 그 말을 끝으로 노인과 일련의 쥐의 무리들이 빛이 닿지 않는 저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자신의 몸을 뒤덮은 붕대의 끝을 손가락으로 다시 만져보았다. 그 감촉을 확인하려는 듯했다. 그가 온 행성에서 그는 왕자였는데 그 행성의 크기가 작았다. 어느 날 정원에 핀 한 송이의 장미를 눈에 담았고 그는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장미가 시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다른 행성들에 피어 있는 장미들을 보아왔고 영원히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것만 같은 권세들의 장미부터 아주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장미까지 그 모든 것들을(장미에 관해서라면) 눈에 담아왔다. 그러나 그가 있던 행성에서 본 것과 같은 장미는 이후로 보지 못했다. 멀어서 시야가 닿지 않는 저편 어둠으로부터 아까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붕대는 귀한 것이오. 우리들이 가진 자원은 값싼 것뿐이라 그대에게 붕대를 받을 수 없소.” 그 말을 끝으로 어둠 속에서는 음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자조적으로 웃음을 지어야 하는지를 잠깐 고민했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부랑자가 된 이후로 그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사회적인 웃음을 지을 수 없게 된 지가 오래였다. 쥐의 시비들이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그라고 깨끗해지지 않길 원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가는 행성마다 마땅한 교환 자원을 구하기가 어려웠던지라 그러한 일이 마음속 깊이부터 질려가게 되면서 그의 말끔한 의복은 헝겊이 되고 몸에서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으며 점점 사람들이 피했다. 그는 장미로 말미암아 사회적인 고립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택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미 그런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는 도중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가 고향에서 마지막 교류를 택하길 그만두었던 그 장미가 별로 아름답거나 독특한 장미는 아니었단 것이다. 각종 고생을 하며 그가 알게 된 것은 다만 그 장미가 아주 고유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가 결말을 피했던 행동에서 어쩌면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장미가 너무도 사랑스러웠기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옆에는 쥐의 시비들이 쥐가 좋아하는 치즈를 담은 접시를 들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단적으로 말해 여기서부터 시작된 이곳 설주라는 곳에서 그가 받은 대접은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설주의 자들은 분명 그들이 가진 자원의 커다란 일부를 떼서 삼 주 동안 그를 정양토록 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가진 붕대의 내력과 이들은 상응하는 데가 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그 설주 노인의 종족의 운영 정책과 맞닿은 데가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얼마 후 고향별로 돌아간 그 부랑자에게서 지구에 있는 설주로 막대한 양의(그가 있는 별은 귀한 광석이 많이 묻혀 있는 별이었다) 치즈로 교환 가능한 자원들이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는 샤워를 마치고 나가 시드는 모습을 보길 피했던 그 장미가 있던 자리에 다가섰다. 한결 깨끗해진 몸이었고 누구도 부랑자라 생각하지 않을 만한 정결한 모습이었다. 사람들과의 접촉이 이젠 그리 꺼려지지 않는 듯했다. 그 장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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