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31일 금요일

카페라떼

커피 맛 우유인지 우유 맛 커피인지 분간할 수 없을 카페라떼가 3/4쯤 채워진 잔을 앞에 놓고 나는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의자 좀 가져가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곧이어 의자를 가져갔고 그곳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도 전부 카페라떼를 시킨 듯했다. 곧 나는 거기서 눈길을 지웠다. 저쪽을 보면 노트북을 선으로 연결해 충전하고 있는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하면 유모차를 테이블 옆에 붙여 놓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시 시선을 돌리면 환기 때문에 정문을 열어 놓은 모습이 보인다. 여기까지 추운 공기가 들어온다. 나는 펜촉을 돌리며 3/4쯤 채워진 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꿈을 잃고 이곳으로 걸어온 것일지도 몰랐다. 저쪽을 보면 공용 주차장이 있고 차들이 꽉꽉 차 있다. 이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카페라떼를 시킨 듯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나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연한 갈색의 음료. 섞지 않으면 밑에 흰 우유 부분이 가라앉아 있다. 사실 이 카페에서는 카페라떼밖에 팔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한 장소 안에서 모두 같은 음료를 마시고 있다니. 어쩌면 거기에서 피어나는 동질감 같은 게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용무와 상념으로 바쁜 것 같았고 어쩌면 멍청해 보이는 자기만의 웃음을 짓는 사람도 건너편에 있었다. 나는 잔에 채워진 카페라떼를 조금씩 마셨다. 아껴가며 마셨다. 왜냐하면 여기 오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까 직원에게 음료를 받던 때를 상기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했는데 나는 그만 대답을 하지 않고 말았다. 시럽을 7번 눌러서 카페라떼에 붓고 난 뒤 나는 이 자리에 앉았다. 내가 이곳을 꿈이라고 생각한 이유 중에 하나는 이곳의 정경이 평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꿈은 아닐 것이다. 아니겠지. 왜냐하면 나는 하나의 실감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것은 권태였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종류의 권태를 느꼈고 그것이 실감 났다. 나는 달콤한 카페라떼를 좋아했다. 내가 마시고 있는 카페라떼에서는 충분한 단맛이 났다. 그것은 연유 라떼라고 하는 것들과 맛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다 같이 카페라떼를 마시고 있는 이 광경 속에서 나와 옆 사람, 옆옆 사람, 옆 사람들과의 차이가 덜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예전에는 꿈을 꾸곤 했는지도 몰랐다. 요즘에 나는 꿈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꿈과 가까웠던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지금은 꿈을 잃은 것인지도 몰랐다. 거기에는 이전의 관성이 남아 있고 기록되어 있어서, 지금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한번 가까웠던 것은 운명의 실이 그것을 매단 채 놓아주지 않고 있다. 내게 있어선 그런 것이 거리이다. 아무리 멀어져도 금방 닿을 수 있고, 가까이 있어도 먼 그런 귀속들. 그런데 난 여기에서 무엇이 그리운 걸지도 몰랐다. 나는 무엇이 그리운 걸까? 왠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거리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한번 가까웠다가 이제 멀어지게 된 것들의 생각이 난 듯했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과 일종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었고 그것은 거미줄과 모양이 엇비슷했다. 거리가 먼 것 같아도 휴대폰과 SNS 등을 통해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듯했다. 반면에 이곳의 카페라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거리가 가까운데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볼록 렌즈 너머로 보는 세상이 볼록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처럼. 나는 그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한 느낌이 나를 이 자리에 붙박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이 내가 느낀 권태의 전말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이동할 수 있으나 이동하기 어려웠고, 꽤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카페라떼는 아직도 정확히 3/4이 잔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 오래 있으려고 너무 조금씩 홀짝인 것일지도 몰랐고, 나는 여기에서 잘못된 전언을 남기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것도 오목하게, 거리가 가까운데 나에게서 거리가 먼 듯했다. 어쩌면 안경을 안 닦아서인지도 몰랐고, 아니면 지금 내가 두 눈으로 흘리고 있는 눈물이 시야를 가려서인지도 몰랐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났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져 울었다. 나는 이 카페라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울었다. 하나둘씩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고 어쩌면 내가 어릴 적에 꾸던 꿈은 카페에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카페라떼를 마시는 일에 가까운 것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때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