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4일 토요일

성골 프롤레타리아를 찾아서

여러분과 나 자신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급격히 악화된다. 그러면 또다시 뭔가 쓰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재차 이러고 있다. 이건 뭐 내가 일간 이슬아도 아니고. 국수 뽑아내듯이 뭘 자꾸 뽑아내요? 에휴 하여튼. 곡물창고에 돗자리 깔면서 특정한 주제를 생각해둔 것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노동 에세이를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것도 근무시간 내에서라는 말도 안 되는 제약 하에서. 오늘은 주말이다. 출근 안 하는 날이라고 해서 노동자가 노동자 말고 다른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쓴다.
하지만 쁘띠 부르주아로 추정되는 작자가 징징거리는 이야기 같은 것을 누가 읽고 싶겠는가. 나조차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배부른 소리 따위의 꼬리표를 모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에서는 누가 무슨 말을 하건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말할 자격을 갖춘 자 도대체 어디에 계신가. 그러니까 말하자면... 성골 프롤레타리아를 찾아서. 아니 사실 별로 찾고 싶지 않다. 나야말로 출신성분 좋은 혁명집안 출신이다. 가까운 가계도를 뒤져봐도 아주 그냥 농부랑 노동자 말고는 뭐가 안 나와요. 우리 세대에 오면서 일부 대학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한 일부 사촌들 때문에 우리 집안의 순수성이 망가졌구나. 언제 한번 날 잡고 자아비판 씨게 때리겄습니다.
프롤레타리아 얘기 나온 김에 말 좀만 더 얹어보자.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랑시에르는 소위 ‘평민 철학자’라고 불리는 루이 가브리엘 고니(Louis Gabriel Gauny)에게 관심을 갖는다. 노동자는 무엇에 그토록 분노하고 절망하는가. 고니에 따르면 그것은 다름아닌 시간의 박탈이다. “시간은 나에게 속하지 않는다.” 그에겐 노동 이외의 다른 무언가에 몰두할, 달리 말해 빈둥거릴 시간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종류의 시간은 오로지 부르지아지에게 속한다. (그렇다면 고니는 도대체 어떻게 글을 쓰고 남겼는가. 밤잠을 유예시켜 시간을 마련하는 방법이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 빈둥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살아간다. 확실히 과거에 비하자면 나은 처지인 것이다. 심지어는 정통 노동계급인줄 알았던 내 부모 및 일가친척들도 맨날 텔레비전 보면서 빈둥거린다. 그렇다면 이제 다함께 (최소한) 쁘띠 부르주아라는 정체성을 확인받고 만족하면 되는 문제인가.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쁘띠 부르주아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니들끼리 해라. 이를테면 이러한 상황들이야말로 나를 당혹스럽게 하고 불유쾌하게 만든다. 끝없는 자격 확인 절차라는 머저리 같은 장난질. 그럼 뭐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아주 그냥 옛날 운동하시던 분들처럼 공장으로 침투합니까? 아니면 이럴 바에 차라리 룸펜 인텔리겐치아로 눌러앉아서 돈 없다고 맨날 징징거려요? 말하자면 나는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싶은 것이다. 성골 프롤레타리아 따위는 찾아다니지 맙시다. 차라리 히로빈 찾아다니는 마크 초딩이 더 영양가 있을 듯. 달리 말해, 이제 우리는 모두 배가 불러서 배부른 소리밖에 못한다고 인정을 해야 뭐라도 한다. 하층민의 걱정거리가 배고픔이 아닌 비만이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덧붙여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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