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6일 일요일

이사야가 회색 태비라기에

몇 주째 창고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곳이다. 대신 조용해서 종종 노트북을 들고 온다. 여기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고 봐야 맞는다. 하릴없이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검색창에 ‘회색 태비’를 입력해봤다. 쥐잡이 이사야가 회색 태비라고 했었나? 치즈 태비는 많이 들어봤는데 회색 태비는 낯설다. 그러고보니 검은 태비도 흰색 태비도 낯설게 느껴진다. 고등어 태비는 어디서 들어보았다. 온순하고 침착한 캣. 살집 두툼한 무늬 고양이들.

연관 검색어로는 마눌고양이가 있다. 어디에서는 ‘마눌’이 ‘못생긴 귀’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또 어디에서는 ‘마눌’이 ‘작은’이라는 뜻의 몽골어라고 설명한다. 이 중 무엇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설명들을 기계적으로 합하면 마눌고양이는 못생긴 귀를 가진 작은 고양이다. 마눌고양이의 사진을 보면 이 설명이 적절한 것 같다. 또 얼굴이 둥글고 털북숭이다. 그러나 이 외양이 고양이의 남모르는 사연과 생활양식까지 말해주진 않는다.

마눌고양이는 몽골 등 중앙아시아에 점점이 분포해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이다. 보통 혼자서 생활하며 어둑해지는 저녁에 가장 활발히 활동한다. 아주 한밤중을 선호하진 않는 모양이다. 야생에서 살다보니 전염병 등 위험에 수시로 노출되어 수명은 5~6년 정도로 짧다. 단명하는 고양이.

이것의 연관 검색어로는 ‘manul cat price’ ‘마눌고양이 분양’ 등이 있다. 마눌고양이의 다른 이름으로는 ‘마눌들고양이’가 있다. 즉 들에 사는 고양이다. 그런데 또 다른 연관 검색어로는 ‘마눌고양이 길들이는 법’ ‘마눌고양이 기르는 법’ 등이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다. 평소 한두 명 정도 드나드는 한적한 블로그인데 요며칠 조회수가 늘었다. 유입 통계를 확인해보니 83% 정도가 ‘마눌고양이 분양’을 검색해 들어오고 있다. 이런 의도로 쓴 글이 아니기에 비공개로 돌릴까 했지만 오히려 그냥 두었다. 이 글은 쥐잡이 이사야가 회색 태비라기에 쓰기 시작했다.

이후로 며칠째 여전히 창고 근처를 서성이는데 아직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꼭 누군가 만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렇지 않다. 분명 처음 와본 곳인데 자꾸 오다보니 언젠가 와봤던 곳 같기도 하다. 요옹요옹. 이사야의 울음소리는 이곳에서 들리는 다른 소리들과 구분하기 쉽다. 다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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