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9일 금요일

게시판 다는 날

관리인이 게시판을 달았다. 못을 박았다가 뽑았다가... 그 자리 벽이 다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다.

이런 거 단다고 누가 쓰겠어요? 모금통도 몇 달째 비어 있는데.

게시판을 이 각도에서 보고 저 각도에서 보던 관리인은

그래도 전에 무슨 쪽지함이니 우편함이니 그런 거보단 낫지 않아?

하고선 턱을 만지며 덧붙였다.

모금통은, 돈을 쓰질 않으니 들어오지도 않는 거야. 차라리 기금으로 뭐라도 해. 수전노처럼 굴지 말고.

뭐? 수전노? 수전노가 아니라, 진짜 뭘 할지 잘 모르겠어서...

그게 수전노야. 모르겠는데 돈은 왜 쥐고 있어? 은행 좋은 일만 시키는 거지.

아 네네. 잘 아셔서 좋으시겠어요.

자네도 여기 뭐라도 한마디 써서 붙여 봐.

무슨 한마디요?

근처에서 이사야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관리인은 연장을 챙긴다.

아무 한마디나. 안녕하세요? 모금통으로 모은 돈을 어디에 쓸까요? 그런 거라도 물어보라고. 아니면, 자네도 창고에 들어오는 건 다 읽고 있을 거 아냐? 최근 들어온 뭐뭐가 참 좋습니다, 읽어들 보세요, 또, 무슨, 일하다 심심할 때 삼행시 같은 거라도 지어서 올려. 말마따나 자네 아니면 누가 쓰겠어?

무슨 말이에요 그게. 그래도 달아두면 쓸 사람이 있겠죠. 왜 없어요.

없을 거라며? 그래 없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자네가 써. 나 쓰라고 달린거다, 생각을 하면서. 그럼 쥐잡이가 쓰겠나? 하여튼 필요는 하다고. 여 봐봐, 분위기가 훨씬 좋잖아? 자네도 종일 관리실에 앉아 있어 보란 말야. 얼마나 살풍경하고 수상쩍어 보이는가 이 말이야... 내가 이런데 남들은 오죽하겠어?

알았어요. 알았어. 창고에만 있지 말고 산책도 좀 나갔다 오고 하세요.

도대체 무슨 소리야? 메타버스?

관리인은 껄껄 웃으면서 이사야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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