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두족류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로 시작하는 농담이 있다. 뒤집힌 양말을 다시 뒤집듯이, 세상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하나는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람이고, 하나는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데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용서할 권한을 가졌다는 뜻이고, 하나는 모든 것을 묵묵히 감내한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다는 건? 역시 두 가지 뜻으로, 하나는 용서할 아무런 도리가 없다는 뜻이고, 하나는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용서할 권한이 있다는 건 어떨까? 용서할 권한이 오직 내 안에 있고 나에게만 미친다는 뜻이면서, 용서할 만한 일을 절대 당하지 않는 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용서를 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우리는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에 있다는 말과 한 사람의 내면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말 사이에 아주 대단한 차이가 없다는 걸 이런 식으로 안다.

출판사 ‘두족류’의 로고는 휘리릭 펼쳐지는 중인 책을 책머리 방향에서 본 모양이다. 그것은 매달린 책처럼도 보이고, 책배부터 떨어지는 중인 책처럼도 보이고, 거꾸로 놓인 부채처럼도 보인다. 책등에서부터 방사형으로 뻗쳐 나오는 낱장들의 선은 출판사 두족류 구성원들의... 뭔가를 자극한다. 출판사 두족류에 다닌 지가 벌써 얼마인가? 나는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이 로고를 들여다본다. 옆자리의 동료도 그런다는 걸 알고 있다. 굳이 서브컬처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두족류의 여러 신비한 특징에 대해서는 오늘날 제법 알려져 있다. 출판사 두족류에서 나오는 책의 특징이라면, 책등과 표지의 위아래가 서로 반대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게 사고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두족류의 책을 서가에 꽂을 때 책등을 바로 보이게 할 것이냐 책을 뽑았을 때 표지가 바로 보이게 할 것이냐를 두고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출판사 두족류의 저자 섭외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저자는 모욕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는 저자 후보에게 처음으로 연락하며 다음의 말로 시작한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지요?’ 그러면 저자들은 보통...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