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8일 일요일

실명

 내 본명은 김거울이다. 사실 그건 내가 예전에 만난 어떤 사람의 이름이다. 잘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다. 그 사람은 13년 전에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노랗게 탈색한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었고 자신의 취미가 잘 잊어버리는 거라고 말해서 몇몇 사람들이 웃었다. 그 뒤에 내가 내 소개를 했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도 저렇게 재미있게 소개를 해서 사람들을 웃기면 좋았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 침대에 누워 있고 잠을 자려고 애쓰는 중인데, 갑자기 그 사람이 생각났다. 13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을 말이다. 그냥 한 번 스쳤을 뿐인 그런 사람을 갑자기 생각하게 되는 건 왜일까. 그냥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내 본명은 김거울이다. 저녁에 A의 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어떤 협회의 대표인데, 나는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었고, 하지만 좋은 인상을 갖지는 못했고, 하지만 그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이며, 그 분야에서는 최고라고 볼 수 있고, 근데 그 최고라는 건 누가 붙여주는 건지? 아무튼 그 사람은 일을 잘하기로 소문이 났으며, 자신의 일에 대한 홍보도 적당히 하고, 아무튼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똑 부러지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그 좋지 않은 인상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사람이 나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대화를 중단하고 사라져버려서 그렇다고 했다. 중단을 하기 전에 어떤 말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사라져버리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A는 그 사람이 단단한 사람이라고 했고, 나는 단단하다기보다 배려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A는 그런 단단함이 없으면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가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나는 단단한데 배려가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A는 그 사람이 그 순간에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을 수 있고,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일 수 있으니, 한순간의 태도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라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을 평가하는 건 아니고, 그 사람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인상이라는 건 바뀔 수 있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일 이후로 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건 사실이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그 사람의 업적 같은 것에 말이다. A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업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게 왠지 모르겠지만 힘들다고 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는데, 대화가 끝난 뒤에 정신을 차려보니 접시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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