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3일 화요일

진주 같은 것

회벽으로 경계 세운 마을을 지나가다가
캄캄한 철문 앞에 앉아 있는 여인들을 만났다.
전도자들이었다.
손이 두툼한 사람들이었다.
서로의 무릎 앞에
작고 하얀 진주를 산처럼 쌓아놓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불러세워
그 안에 손을 넣어보라고 권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을 위하여?
영혼을 위하여.
말총머리를 하고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허리 굽은 여인에게 물었다.
이 진주들은 희고 아름답네요, 이 많은 것을 어디서 구하셨나요?
여자는 속눈썹을 훑으며 말했다.
이 문을 지나는 이들이 흘리고 간
먼지를 굳혀 만들었다오.
건장한 어깨를 가진 장정은
어깨를 흘리고 갔다오.
머리숱 많은 여인은 사라져도 모를
머리카락을 흘리고 갔다오.
노인들은 종종 모자를 흘린다오.
대신 스카프를 챙겨 다행이다, 안도하면서…
제일 중요한 재료는
아이들이 흘리고 간 것이라오,
세상을 손에 쥔 오렌지처럼 통통 굴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놓치고 마니까.
그때 신문을 펼쳐 읽고 있던 다른 여인이 말했다.
당신도 지금 뭔가를 떨어뜨렸소.
콩밭을 지나왔소?
콩 한 알을 떨어뜨렸소.
나는 지나온 길이 너무 많아
어디를 다녀왔는지 너무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다.
기억은 꼭
달리는 열차 바퀴에 깔려 죽은 것 같았다.
그럼 그것도 진주가 될 수 있나요?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과객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에
그대로 진주 더미에 넣었던 손을 뺐다.
바깥으로 밀려난 진주 한 알을
몰래 손안에 쥔 채였다.
여행 내내 나는 그것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가
깔고 앉기도 하고
다시 꺼내 보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런데 이게 아직도 있네!
생각나면 꺼내 보며 깔깔 웃다가
얌전히 가방 속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나는 그것을
때론 먹고
때론 자기도 하는 나의 방
나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게 영혼인가
인조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면
수천만 개의 망점으로 이루어진 진주.
나는 그 흑백의 그리드 사이에서
누군가의 오른손에 쥐어진
작은 나무 십자가를 본 것 같다.
언제나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울고 있는 그녀는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
말총머리의 여인일까.
아니면 신문을 읽고 있던 여인일까.
철문 앞의 여인들이 이런 실루엣이었던가?
반세기가 더 지난 듯한 이 이미지는
이제 막 삶이 고단해지기 시작한
모르는 젊은 여인을 보여준다.
내 기억은 어디선가 여러 번
밟혀 죽은 것 같지만
지나며 분명 본 듯한
바로 그 여인을.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