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여행중이다. 떠나기 전에 내게 수요일 12시에 카페에 가서 글 한 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마치 나인 것처럼 써달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는 한국에 있는 자신의 집을 잠시 세놓고 간다고 했다. 그 돈으로 잠시 로마에 간다고 했다. 글을 쓰러. 그곳에 집을 빌려 살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한국의 세입자가 낸 돈으로 로마에서 세입자가 될 것이고, 요즘은 한국 물가가 높아 그 돈으로 로마의 작은 아파트를 빌리고도 남을 거라고 했다. 물론 중심이 아니라 외곽에 있는 작은 아파트. 그런데 그곳에서 도심까지 가려면, 로마의 악명 높은 대중교통 시스템으로 인해 거의 세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 본 결과 걸어가면 두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지역은 밤에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굳이 그 지역에 방을 빌린 건, 자신의 아파트를 세놓고 받은 돈으로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어서 그렇다고. 사실 그의 집 세입자는 그 나이 또래의 사람인데, 그는 그와 이미 만나서 긴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어느 정도 관심사가 비슷했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가 버는 금액의 절반 이상을 월세로 낸다고 했는데, 그는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들어 월세 5만원을 깎아줬다고 했다. 그의 세입자는 고마워했고, 그는 그 일로 왠지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아무튼 그는 세입자가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그의 물건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그가 아끼는 책상이라든가, 베란다에 있는 안락의자 같은 것. 혹은 벨벳으로 된 침대보와 이불, 그가 아끼는 오가닉 코튼 재질의 잠옷 등등. 하지만 대신에, 매주 월요일에 집에 있는 모든 화분에 물을 주고, 그가 유리병에 표시한 만큼의 물을 각각의 화분에 줄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또 그의 이불보와 잠옷을 매주 규칙적으로 세탁할 것. 안락의자 시트 역시 매주 세탁할 것. 실내용 슬리퍼는 세탁기에 넣어서 돌리되 온도는 20도 이하로 설정할 것. 매일매일 환기시킬 것. 방충망은 열지 말 것 등등. 그는 리스트를 만들어 그에게 주었다고 했다. 그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래서 그가 헷갈리거나 추상적인 느낌 없이, 그것들을 할 수 있도록. 그는 5만원을 깎아주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부탁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헷갈리거나 추상적인 느낌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