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8일 목요일

고서 감정사

이 책의 표지에서는 이론서의 냄새가 난다.
이론서는 냄새만 맡아도 이론서이고, 에세이는 냄새만 맡아도 에세이이다. 특히나 전도서는 잊을 수 없을 만큼 고풍스러우면서도 악독한 냄새를 품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질식사할 것만 같다.
종이책=고서들은 저마다의 냄새를 품고 있다. 어떤 종이로 만들어졌는지, 주로 어디에서 어떻게 보관되었는지, 어떤 이들의 손을 거쳤는지에 따라 다른 냄새를 입게 된다. 아,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 냄새를 통해 정말로 어떤 책인지를 정확히 감별할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오해는 말기를. 우리는 책 감정사이지 책 소믈리에가 아니다.
선조들은 종이책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정말로 오리라고까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때때로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고어들을 번역해보면 ‘어쨌거나 종이책은 남아 있을 것이다’ 따위의, 추락하는 캡슐 속에서 보내는 희망의 구조 사인 같은 메시지들이 당대 여러 작가의 잡문 속에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선조들이 어떻게 생각했든 간에 책은 여전히 ‘생성’되고 있지만, 종이책은 유물이 되었다. 아직 개념 합의가 완전히 된 것은 아니나, 책은 더 이상 ‘물성’(선조들이 종종 사용했던 단어인데, 왜 이런 개념이 필요했는지는 모르겠다)을 지닌 단어가 아니라 지시적인 단어에 가깝다. 어떠한 대상에 대해 어떤 이가 그것을 ‘읽어내야’ 한다고 요구하면 그것은 책이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책의 개념에 관하여 선조들이 동의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종이책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더불어 책이 ‘전자책’이라는 과도기적 개념을 벗어난 뒤에도) 책이라는 단어가 이토록이나 모호한 형태로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어떠한 식으로라도 ‘책’이라는 단어를 존속시키고자 많은(소수의) 지식인들이 암암리에 공을 들였다는 점을 알아채도록 만든다.
손님은 내가 이론서에 책정한 감정가를 듣고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는 우연히 손에 넣게 된 고서를 팔아 크레디트를 여유롭게 채우고자 했던 모양이다. 감정받는 책이 이론서라는 걸 알면 높은 감정가를 받을 것으로 흔히들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에세이라고 다 낮은 감정가를 받는 게 아니듯이 이론서라고 다 높은 감정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 이론서 및 저자가 당대에 미친 영향력이 막대했더라도 그 작가들이 살던 시간으로부터 아득히 멀리 떨어진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런 점들이 ‘그다지’ 고평가의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제본의 형태나 디자인 등도 확실한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어떤 얇은 페이퍼백은 어떤 두꺼운 하드커버보다도 훨씬 비싸다. (대중들이 책을 소비하지 않아 출판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을 시기에는 시답잖은 책들까지도 죄다 하드커버로 제작되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우리 고서 감정사들은 고서 수집가들이 어떤 책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어떤 책이 고가의 책인지를 명확하게 분류해낼 수 있었는데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책등이 깨끗하며 눈에 띌 것. (가장 중요하다.)
2. 표지가 깨끗하며 개성적이면서도 아름다울 것.
3. ‘기분상’ 책을 몇 장 넘겨보더라도 종이가 바스러지지 않을 만큼 상태가 좋을 것.
4. 작품성이 있는 책이라고 전문가로부터 인증을 받았을 것.
5. 1~4의 조건들을 갖추면서 입수하기가 어려울 것.
6. 1~5의 조건들을 갖추면서 영향력 있는 작가일 것.
7. 1~5의 조건들을 갖추면서 완벽한 무명작가일 것. (현재 유명세와는 상관없이 당대에 무명이었던 점이 중요하며, 단 한 권의 책만 가지고 있을수록 좋다. 이를 가려내는 데 있어 당대에 여러 필명을 사용했던 작가들이 무더기로 밝혀졌다.)

더는 종이로 만든 책이 생산되지 않고, 어떤 책은 그 책에 쓰인 언어가 더는 상용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을 거래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은 재미있다. 그들 중에는 고서를 번역해 읽는 이들도 극소수 있지만, 대부분은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이다(물론 그들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저 딱히 고서를 읽을 이유는 없기에 읽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어떤 물건을 모으는 수집가들이 어째서 그 물건을 선택하게 되는지 그 이유가 가끔 궁금하다.
고서 수집가들의 성배 중 하나는 21세기에 출간된 『카페 인터내셔널』이다. 이 에세이는 지금은 사용자가 거의 사라진 한국어로 쓰였으며, 작가가 죽기 전까지 개정 증보하여 총 여섯 개의 판본을 가지고 있다. 책등은 무채색으로 판본마다 음영의 깊이를 달리하며, 신국변형에 무선 제본으로 제작되었고, 서체로는 노토 세리프가 사용되었다. 작가는 생전에 이 ‘여섯 개의 판본을 가진’ 단 ‘한 권의 책’만 썼으며, 책은 판본에 따라 각각 한 권씩만 제작되었다. 이 책은 작가의 자기만족을 위한 개인 소장품이 아니었으며, 매 판본은 제작될 때마다 판매되었고 몇 차례 그 주인을 달리했다. 여러 가치 있는 수집 대상 중 특히 그 책을 언급한 까닭은 내가 고서 감정사가 되기로 한 이유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그 책의 실물을 보고자, 만지고자, 그리고 마침내 읽어보고자 이 직업을 택했다. 잠깐, 지금 앞에서 이해되지 않던 많은 것들이 이해되려는 참이니 생각을 끝낸 뒤 다시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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