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5일 토요일

웃으면 된다고 생각해: 박용진 (19년 10월 첫째 주)




도대체 내가 왜 이걸 쓰고 있는 거지... 시대의 명령이냐? 아닌 것 같은데... 긴가민가한 상태로, 이번 주 PIMPS는 우리 회사 부장님을 쏙 빼닮은 민주당 초선의원 박용진을 다룬다. 그간 최소 장관급 정치인들만 다뤘기 때문에 갑자기 격이 훅 떨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정권의 분수령이 될지도 모를 이 시점 박용진은 상당히 중요한 사람이다. 박용진이 누구인가? (이 뒤로 재미없는 얘기☞) 분류하자면 그는 진보적 실용주의자다. 약 20년 전 민주노동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박용진, 진보신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합류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이다. 지난날 사분오열된 좌파들이 선거를 앞두고 온갖 텐트 얘기로 날을 지새던 난세에, 그는 민주당까지도 포함하는 초대형빅텐트(‘대연합’!)에 기울었다. 노·심의 뒤를 이을 만하다 여겨지던 촉망받는 젊은 진보 정치인이 민주당으로 가 버린 일은 남은 사람들을 꽤 낙심시켰고, 당연히 변절자 소리도 들었다. 괘씸한 개량 녀석... 민주당에 간 뒤에는 비주류라는 위치 덕이었는지 당내 극한 갈등 가운데서 줄기차게 대변인직을 맡다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에게 깜짝 발탁, 원내에도 진출했다. 의원이 된 뒤에는 삼성 문제를 꾸준히 팠으며, 유치원 3법으로 얼굴과 이름을 크게 알렸다. 작금의 조국 임명 국면에서는 비판적 입장을 냈다가 정권 지지자들로부터 욕을 엄청 먹었다. 관련해서 유시민과의 잠깐 논전은 그 수준이 좀 낯간지럽긴 했지만, 역사의 막중한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리버럴 왼쪽으로서  정권에 속했다가 부침 속에 패장이 되어 좌파 근처까지 쓸려 나왔던 78학번 유시민은 文 정권과 함께 정파의 대변인으로 컴백했고, 민주당이 86세대를 추수해 간 직후의 황무지에서 좌파로 시작한 90학번 박용진은 10년을 버티다 혼자 민주당으로 들어가 또 10년이 되기 전에 초선의원이 되어 소장파 취급을 받는다. 유시민은 좌파한테 욕 먹을 게 뻔한데 당적도 없이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며 정권의 입 역할을 도맡았고, 박용진은 정권 지지층에 욕을 먹으면서도 좌파적 민심(?)을 대변하며 당내 비판자 역을 자처했다. 이건 그야말로 대단들하신, 슬픔의 다크히어로들 아니신가? 한 번 꼬이고 두 번 꼬이고 세 번 꼬인 다이내믹 코리아의 정치판, 솔직히 좌파 입장에선 허탈한 웃음만 나오는 상황...

오늘날 그를 중요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비문(?)-민주당좌파(?)-실용주의자(?)라는 기묘한 포지셔닝 때문이다. 이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은 딱 한 명 더 있을 뿐(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건 미묘한 체크무늬 마이를 입고 벌이는 아슬아슬 줄타기다. 그게 되려면 말을 교묘하게 할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핵심 메시지를 지켜내면서 시류를 읽는 감각도 있어야 한다. 몇 번 미끄러지긴 했어도 지금까지의 곡예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박용진이라는 카드는 당장 보면 딱히 쓸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어쩐지 버릴 수는 없는 카드다. 위기 상황이 왔을 때 이걸로 어디? 하며 아크로바틱하게 자꾸 흔들고 싶은 것. 다가오는 선거제 개편과 연립 정권 국면까지 고려를 했을 때 그의 중량감은 여하간 더 높아질 공산이 크다. 실제로 권한이 주어졌을 때 무슨 짓을 할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그 나이부터 이렇게 스케일을 크게 그리면서 정치하는 사람은 잘 없다. 그런데 그런 박용진이가 도대체 뭐가 문제냐? 좀 갑작스런 얘기지만 친구가 없다.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김종인 옆에서 오랜만에 화색이 좀 돌았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지금은 영 외로워 보이니 빨리 친구를 만들어라.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어도 우수에 찬 눈매는 감추기가 어렵다.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의 마니또라도 되어 보는 건 어떨까? 정 어려우면 임시로 손인형을 끼고 다녀도 괜찮을 것이다. 당연히 이름(영길이, 종인 Jr... 뭐든)도 붙여 줘라. 바쁘겠지만 시간을 짜내 취미로 복화술을 연습하는 것도 추천한다. 한 입으로 두 말 세 말 정도는 할 줄도 알아야 한다. 586이나 그 위 등등이 뭐라 할 때 욕을 해버리는 데에도 좋겠다. 그 다음은 범생이 같은 머리 모양 바꾸기. 도대체가... 지금처럼 한쪽으로 넘겨 특유의 시그니처 실루엣을 몇 십 년 유지하는 것까지는 좋은데(큰 꿈을 꾸는 정치인들은 다들 그렇게 한다), 더 이상 자신이 젊은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옛날엔 산뜻한 느낌 비슷한 게 있었지만 더는 아니라는 얘기. 그거가 정진석 머리(비열해 보인다는 뜻)다. 문재인과는 가르마를 반대로 타보겠다는 전략일까? 적당히 거리를 둬야 좋지만 너무 치우쳐서도 안 된다. 1) 모나지 않게 균형을 추구한다 2) 젊은이들과 호흡하기 위해 노력한다 3) 유일무이한 실루엣을 획득한다 의미에서 아프로 정도가 잘 어울리리라 본다. 대성공한 사례도 있으니 마땅히 본받을 필요가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머리 터지게 심란했던 다사다난 진보 정치인 시절을 되새길 수도 있을 터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함께 김종인계였던 이언주, 저 끝까지 쭉 달려가 버린 그와도 좋은 대비를 이루지 않을까? 이언주 이야기까지 나오고 보니 이제는 완전히 지쳐 버린다. 박용진... 화이팅...

※추천 아이템: 좌파를 상징하는 조끼, 우파를 상징하는 나비넥타이, 나이를 감출 수 있는 화이트닝 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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