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30일 수요일

사이버낚시꾼

낚시를 왜 하는가, 라는 물음에 낚시꾼들은 저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겠지만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낚시란 인간이 자연 앞에 정면으로 서는 일이며, 이 대립의 무게추가 바로 물고기입니다. 물고기는 소리에 예민하다는 정설에 따라, 물고기가 낚이기 전까지 고요, 또는 숨 죽인 긴장이 이어집니다. 이 인내는 상호적입니다. 인간만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또한 인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창한 날 저수지에 개구리밥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물기슭에 이파리 무성한 나무들이 저수지 쪽으로 몸을 기울여 그늘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물고기가 있을 법한 풍경입니다. 이런 곳에서 물고기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은 계속해서 캐스팅을 시도합니다.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자연은 인간이 수면 아래로 보내는 유혹을 참아내는 일을 학습합니다. 그 긴장과 길항을 낚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략과 인내, 그리고 성취. 하지만 그 스포츠를 위해 물고기의 입이 찢어져야 하는 걸까요? 물고기의 대가리가 토막 나야 하는 걸까요? 허탕을 치는 당신의 발걸음이 무거워져야 하는 걸까요? 허구한 날 바깥으로만 나돌아야 하는 걸까요? 저는 이러한 불합리와 비윤리 등을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으로 사이버 낚시를 제안합니다. 사이버 낚시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스크립트로 직조된 사이버 자연 앞에 정면으로 서게 됩니다. 플레이어는 실제 낚시와 똑같이 낚싯대와 미끼를 선택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어장을 모델로 만든 사이버 어장을 찾아 사이버 낚시를 할 수 있습니다. GPS맵을 따라 보트를 타고 포인트로 이동하면, 화창한 날 저수지에 개구리밥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물기슭에 이파리 무성한 나무들이 저수지 쪽으로 몸을 기울여 그늘을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사이버 낚시에서도 사이버 자연과의 대립은 발생하며, 이 길항 속에서 사이버 물고기를 낚을 수도, 또는 허탕을 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나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감각이 혁신입니다. 나는 여기(방구석)에도 있고 저기(어장)에도 있습니다. 사이버 낚시터로 떠나면 다리가 아프지 않습니다. 기름 값도 나가지 않습니다. 물고기 또한 낚싯바늘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합니다. 플레이어는 사이버 낚시를 통해 진짜 물고기를 얻을 수는 없고 진짜 상금을 거머쥘 수도 없지만, 사이버 머니를 벌 수는 있습니다. 사이버 머니를 모아서 어디에 쓰냐고요? 사이버 장비와 사이버 의상을 구매하는 데 사용합니다. 사이버 낚시터에 접속되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실의 자신보다 사이버의 자신이 자아와 훨씬 더 강력하게 링크되는 것은 당연하므로 방구석에 처박힌 현실의 내가 입을 옷보다는 사이버의 내가 입을 옷이 훨씬 더 중요한 것 또한 순리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는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사이버 낚시를 하면 현실의 물고기는 다치지 않지만 사이버 물고기는 여전히 다칠 위험이 존재한다고. 반복되는 사이버상의 고통이 사이버 물고기들을 진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 고통은 플레이어의 시간 감각을 파괴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한번 시간 감각이 파괴된 이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한없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이버 낚시터에서조차 저는 사이버 물고기를 잡은 뒤 릴리즈를 해주고, 현실의 흔들의자에 앉아 충분한 휴식을 통해 일상성을 회복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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